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37년 — 경초 원년(237) 7월 사도로 재직 중 죽음. 시호 정후(진교전·명제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0년 | 낙양 | 상서(조조 사망 때 세자 즉위를 추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19년 | 위 | (광릉 출신, 진등의 공조·조조 휘하 연대 불명) | 불명 |
| 220년 | 위 | 상서(조조 사망 때 세자 즉위를 추진) | 기록 |
| 221~236년 | 위 | 상서령 | 불명 |
| 237년 | 위 | 사도(재직 중 사망) | 불명 |
조조가 낙양에서 죽자 신하들이 조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할 때 세자를 즉위시키자고 주장해 하루 만에 의례를 갖춘다.
정사 진교전: 신하들이 관례에 매여 태자가 조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진교는 '왕이 밖에서 죽어 천하가 놀랐으니 태자는 슬픔을 억누르고 즉위하라'고 하며 하루에 의례를 마쳤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太子宜割哀即位,以系遠近之望」
상서령에서 사도가 되고 같은 해 7월 죽는다.
정사 명제기: 경초 원년 6월 상서령 진교를 사도로 삼았고 7월 정묘 사도 진교가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以尚書令陳矯爲司徒」 / 三國志 卷03 「司徒陳矯薨」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군을 직접 지휘한 기록은 없다.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이 없다. |
| 지력 | 77 | 조조가 죽자 세자가 조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신하들에게 '태자는 슬픔을 억누르고 즉위해 안팎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진교전). |
| 정치 | 80 | 위군태수로 1천 명이 넘던 오래된 수감자를 한꺼번에 판결했다. 명제가 상서문에 갑자기 오자 '이는 신하의 직분'이라며 막았다(진교전). |
| 매력 | 70 | 조비가 '진계필은 큰 절개에서 밝은 지략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칭찬했다(진교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진교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