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때 81세).
사망 236년 — 청룡 4년(236) 5월 재직 중 죽음(통감). 정사 본문은 '나이 81세에 죽다'만 서술한다. 시호 정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2년 | 거록 | 원소의 참군 → 거록·위군 태수 대리 | 추정 |
| 193년 | 업 | 위군 태수 대리 | 추정 |
| 194년 | 업 | 위군 태수 대리 | 추정 |
| 195년 | 야왕 | (장양에 의탁, 이후 안읍의 천자에게 감) | 추정 |
| 196년 | 낙양 | 부절령(허도 천도를 권함) | 기록 |
| 197년 | 허창 | 하남윤 | 추정 |
| 198년 | 야왕 | 하남윤(장양 잔당을 설득) | 기록 |
| 199년 | 백마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0년 | 백마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1년 | 백마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2년 | 백마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3년 | 백마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4년 | 업 | 간의대부(업 평정 후) | 기록 |
| 219년 | 번성 | (관우 배후 계책 건의) | 기록 |
| 220년 | 낙양 | 대홍려 | 추정 |
| 221년 | 낙양 | 대홍려 | 추정 |
| 222년 | 완 | 시중(강릉 부교 작전 반대) | 기록 |
| 230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1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2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3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4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5년 | 낙양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1년 | 기타·재야 | (영도장·백인령 등, 연대 불명) | 불명 |
| 192년 | 원소·원씨 | 원소의 참군 → 거록·위군 태수 대리 | 추정 |
| 193~194년 | 원소·원씨 | 위군 태수 대리 | 추정 |
| 195년 | 기타·재야 | (장양에 의탁, 이후 안읍의 천자에게 감) | 추정 |
| 196년 | 위 | 부절령(허도 천도를 권함) | 기록 |
| 197년 | 위 | 하남윤 | 추정 |
| 198년 | 위 | 하남윤(장양 잔당을 설득) | 기록 |
| 199~203년 | 위 | 서주·위군 태수 등 | 추정 |
| 204년 | 위 | 간의대부(업 평정 후) | 기록 |
| 205~212년 | 위 | 사공군좨주(운하 건설) | 불명 |
| 213~218년 | 위 | (위공·위왕 칭호 건의) | 불명 |
| 219년 | 위 | (관우 배후 계책 건의) | 기록 |
| 220~221년 | 위 | 대홍려 | 추정 |
| 222년 | 위 | 시중(강릉 부교 작전 반대) | 기록 |
| 223~229년 | 위 | 태상·광록대부·태복·위위 | 불명 |
| 230~235년 | 위 | 사도 대리 → 사도 | 기록 |
| 236년 | 위 | 사도(재직 중 사망) | 불명 |
계교 전투 즈음 원소의 명으로 거록의 모의를 가짜 격문으로 잘라내고 위군에서 도적을 평정한다.
정사 동소전: 원소가 공손찬과 계교에서 맞서자 거록 호족이 공손찬에게 붙으려 했고 원소가 동소에게 거록을 맡겼다. 동소가 가짜 격문으로 손항 등을 모두 베어 군을 평정했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계교 전투(자치통감 초평 3년)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使昭領鉅鹿」 / 三國志 卷14 「偽作紹檄告郡云」
조조에게 천자를 허로 옮기자고 권한다. 양봉이 의심하지 않도록 노양으로 간다는 핑계를 대자고 계책을 올린다.
정사 동소전: 조조가 '무슨 계책을 쓸까' 묻자 동소는 '허로 어가를 옮기는 것뿐'이라 했다. 양봉에게는 노양 행차를 핑계 삼아 의심을 막고 어가를 허로 옮겼다.
연의: 연의 14회 — 연의 14회가 허도 천도 논의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14 「惟有移駕幸許耳」 / 三國志 卷14 「徙大駕至許」
장양이 죽은 뒤 조조의 명으로 단신 성에 들어가 설득해 당일 항복을 받는다.
정사 동소전: 장양이 장수 양추에게 죽자 장사 설홍과 태수 무상이 원소의 구원을 기다리며 성을 지켰다. 조조가 동소를 단신으로 성에 들여보내 설득하게 했고 그날 무리를 들어 항복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太祖令昭單身入城,告喻洪、尚等,即日舉眾降」
조조에게 오등봉건을 건의해 훗날 위공·위왕 칭호의 계기를 만든다.
정사 동소전: 동소가 오등을 건립하자고 건의했고 조조가 사양했으나 이후 위공·위왕 칭호를 받은 일이 모두 동소가 처음 낸 것이라 서술된다. 연도는 위공 즉위(건안 18년)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後太祖遂受魏公、魏王之號,皆昭所創」
번성에서 관우가 조인을 포위했을 때 손권이 보낸 밀서를 일부러 공개해 관우를 흔들자고 건의한다.
정사 동소전: 손권이 형주 기습을 알리며 비밀로 해 달라 했으나 동소는 오히려 알려 관우를 머뭇거리게 하자고 했다. 조조가 서황에게 밀서를 화살로 포위 안과 관우 진영에 쏘게 했고 관우는 머뭇거렸다.
연의: 연의 76회 — 연의 76회가 번성 포위와 형주 기습 전후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14 「即敕救將徐晃以權書射著圍裡及羽屯中」 / 三國志 卷14 「羽果猶豫」
하후상이 강릉 모래섬에 부교로 진입하려 하자 상소로 반대하고, 조비가 받아들여 철수시켜 큰 피해를 면한다.
정사 동소전: 동소가 '섬 안에 주둔하고 부교로 건너고 외길로 가는 것은 병가가 꺼리는 세 가지'라며 반대했다. 조비가 깨닫고 하후상 등에게 철수를 명했고 열흘 뒤 강수가 불어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帝悟昭言,即詔尚等促出」
태화 6년 사도에 올라, 붕당·교유 풍조를 상소해 제갈탄·등양 등이 면직된다.
정사 동소전: 태화 4년 사도 대리, 6년 정식 사도가 됐고, 동소가 말류의 폐단을 상소하자 명제가 절박한 조서로 제갈탄·등양 등을 파면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帝於是發切詔,斥免諸葛誕、鄧颺等」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군 지휘는 거의 없다. 거록·위군에서 도적 토벌을 맡아 효과를 거뒀다(동소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이 없다. |
| 지력 | 90 | 허도 천도, 관우 배후 계책 공개, 장양 항복 설득 등 책략으로 평가된다(동소전). 강릉 부교 작전 반대도 맞았다. |
| 정치 | 83 | 위공·위왕 칭호를 올리자는 건의를 처음 했다. 운하(평로·천주)를 만들어 군량을 운반하게 했다(동소전). |
| 매력 | 53 | 원소·장양·조조·조비·조예를 차례로 섬겼으나 평가가 엇갈린다. 매력은 중간값.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동소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