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0년경(추정) — 생년 불명(18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36년 — 청룡 4년(236) 사망, 시호 정후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3년 | 기타·재야 | (영천 허창 출신, 출사 전·연대 불명) | 불명 |
| 194~197년 | 촉한 | 유비의 예주 별가 | 불명 |
| 198~212년 | 위 | 사공서조연속→치서시어사·참승상군사 | 불명 |
| 213~219년 | 위 | 어사중승→시중·승상 동서조연 | 불명 |
| 220~226년 | 위 | 상서→상서령→진군대장군·녹상서사 | 불명 |
| 227~236년 | 위 | 사공·녹상서사 | 불명 |
유비가 서주로 가려 하자 원술과 싸우고 여포가 하비를 칠 것이라며 말렸으나 듣지 않는다.
정사 진군전: 유비가 예주를 다스릴 때 진군을 별가로 불렀다. 도겸이 죽고 서주가 유비를 맞으려 하자 진군이 원술이 아직 강해 동쪽으로 가면 반드시 싸우게 되고 여포가 뒤를 칠 것이라 했으나 유비는 동쪽으로 갔고 여포가 하비를 습격해 크게 졌다. 연도는 도겸 사망(194)에서 따옴.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본 「袁術尚強今東必與之爭」
여포가 격파되자 조조가 사공서조연속으로 불러 쓴다.
정사 진군전: 여포가 깨지자 태조가 진군을 사공서조연속으로 불렀다. 왕모·주규의 추천을 반려해 뒤에 둘 다 간악으로 죽어 사람을 알아본다는 평을 얻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본 「屬呂布破太祖辟羣為司空西曹掾屬」
문제를 위해 구품관인법을 제정한다.
정사 진군전: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진군이 상서가 되었고 구품으로 관인을 뽑는 법을 진군이 세웠다. 연도는 즉위 직후인 220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본 「制九品官人之法羣所建也」
조진이 여러 길로 촉을 치려 하자 야곡·자오도의 불리함을 들어 막고 철군을 건의해 받아들여진다.
정사 진군전: 태화 중 조진이 사곡으로 촉을 치려 하자 진군이 양평 때 장로를 못 이긴 일을 들어 불가하다고 했고 명제가 따랐다. 조진이 다시 자오도를 주청하자 또 불가하다고 했으나 조진이 강행했고 장마가 길어지자 철군을 건의해 따랐다. 본문 연도는 태화 중이며 230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본 「太和中曹真表欲數道伐蜀從斜谷入」
청룡 4년에 죽고 시호는 정후다.
정사 진군전: 청룡 4년 사망, 시호 정후. 명제가 공덕을 생각해 호읍을 나눠 아들 하나를 열후로 봉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본 「子泰嗣帝追思羣功德」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5 | 문제의 오 정벌 때 중령군·수군 도독을 맡았으나 전공 기록은 적다(진군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진군전). |
| 지력 | 77 | 조진의 촉 정벌 때 야곡·자오도의 불리함과 비용을 들어 철군을 건의해 받아들여졌다(진군전). |
| 정치 | 88 | 구품관인법을 세웠고 궁실 영건과 황녀 장례의 과도함을 직언했다(진군전). |
| 매력 | 76 | 조조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평했고 유엽의 죄를 풀게 한 뒤 사사로움이 아니라고 했다(진군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진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