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3년경(추정) — 생년 불명(163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16년 — 건안 21년(216) 조조의 명으로 사사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0년 | 연진 | 원소 기도위(연대 불명) | 기록 |
| 204년 | 업 | 기주별가종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9년 | 기타·재야 | (청하 출신, 정현에게 배움·연대 불명) | 불명 |
| 200년 | 원소·원씨 | 원소 기도위(연대 불명) | 기록 |
| 201~203년 | 원소·원씨 | 원소 기도위(연대 불명) | 불명 |
| 204년 | 위 | 기주별가종사 | 기록 |
| 205~207년 | 위 | 기주별가종사 | 불명 |
| 208~212년 | 위 | 동서조연속·정사 | 불명 |
| 213~215년 | 위 | 상서→중위(위국 초건) | 불명 |
| 216년 | 위 | 중위→사사 | 불명 |
원소가 여양에서 연진으로 진군하자 천자가 허에 있으니 경계를 지키라고 간하나 듣지 않고 관도에서 진다.
정사 최염전: 원소가 여양에서 군을 정비하고 연진에 머물자 최염이 천자가 허에 있고 백성이 순리를 돕고자 하니 경계를 지키며 직분을 다하는 편이 낫다고 간했으나 원소가 듣지 않아 관도에서 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天子在許民望助順不如守境述職以寧區宇」
조조가 기주를 평정하자 별가종사가 되어 호구만 헤아리는 것을 직언한다.
정사 최염전: 태조가 원씨를 깨고 기주목을 겸하자 최염을 별가종사로 불렀다. 조조가 호적으로 30만을 얻는다며 큰 주라 하자 최염이 왕사의 인성이 먼저 닿은 적이 없고 갑병부터 따진다고 직언했고 조조가 낯빛을 고쳐 사과했다. 기주 평정은 204년.
연의: 연의 33회 — 연의 33회는 기주 현사를 찾던 조조에게 백성이 최염을 천거하는 대목으로 바꾼다.
출전: 三國志 卷12 본 「未聞王師仁聲先路存問風俗救其塗炭而校計甲兵唯此爲先」
조식과 조비 중 후계를 묻는 비밀 서신에 맏이를 세워야 한다고 공개 답서로 답한다.
정사 최염전: 위국이 세워져 상서가 되었다. 아직 태자가 없을 때 조조가 의심해 밀서로 외부에 물었고 최염만 공개 판자에 "맏이를 세우는 것이 춘추의 뜻이며 오관장이 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조식은 최염의 형 딸의 남편이었다. 연도는 위국 초건(213) 이후 중위 승진 전으로 보아 214년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加五官將仁孝聰明宜承正統琰以死守之」
양훈에게 보낸 서한의 말을 비방으로 몰려 조조의 노여움을 사 사사된다.
정사 최염전: 최염이 추천한 양훈이 조조의 공덕을 칭송하는 표를 올려 비웃음을 사자 최염이 "때여 때여, 마땅히 변할 때가 있다"고 썼다. 이를 오만한 원망이라 고하자 조조가 노해 도예로 삼았고 낯빛이 굽지 않았다는 말에 사사했다. 연도는 216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문에는 없다.
연의: 연의 68회 — 연의 68회는 조조의 위왕 추대에 반대한 일로 바꿔 옥중에서 장살당하는 것으로 적는다.
출전: 三國志 卷12 본 「遂賜琰死」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군을 지휘한 기록은 없다. 원소의 군이 연진에 머물 때 지키는 편이 낫다고 간했다(최염전). |
| 무력 | 50 | 젊어서 검술을 좋아하고 무를 숭상했다고 한다(최염전). |
| 지력 | 71 | 원소의 연진 진군을 막으려 했고 조조의 교계 인재 천거를 맞췄다(최염전). 손례·노육 등을 일찍 알아봤다. |
| 정치 | 78 | 기주별가로서 호구만 따지는 조조에게 먼저 백성을 위로하라고 직언했다(최염전). |
| 매력 | 89 | 수염이 네 자나 되어 조정 사람이 우러르고 조조도 어려워했다(최염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최염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