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杜畿)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24년기록 연도 15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24년 — 사망 연도 불명. 문제 때 맹진에서 배를 시험하다 바람에 침몰해 죽었다(두기전). 224년은 계산용 가정값이다.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5년안읍하동태수기록
206년안읍하동태수기록
207년안읍하동태수기록
208년안읍하동태수기록
209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0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1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2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3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4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5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6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7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8년안읍하동태수기록
219년안읍하동태수기록
220년허창상서 → 상서복야(문제 수행)추정
221년허창상서 → 상서복야(문제 수행)추정
222년허창상서 → 상서복야(문제 수행)추정
223년허창상서 → 상서복야(문제 수행)추정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04년위(경조 두릉 출신, 서평태수 등 연대 불명)불명
205~219년위하동태수기록
220~223년위상서 → 상서복야(문제 수행)추정
224년위상서복야(맹진에서 시험 중 사망)불명

나온 사건·전투

205년 · 하동태수 · 승진

고간이 병주에서 반란하자 하동 호족 위고·범선이 호응하려 할 때, 단신으로 하동에 들어가 위고를 따르는 척하며 힘을 흩어 평정한다.

정사 두기전: 조조가 순욱의 추천으로 두기를 하동태수로 삼았다. 위고 등은 섬진을 끊었으나 두기가 우회로 도하해 위고를 이끌고 병력을 줄여 한 달에 백성 4천을 모아 반란을 진압했다. 연도는 자치통감 건안 10년 서술에 맞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6 「於是追拜畿為河東太守」 / 三國志 卷16 「遂詭道從郖津度」

211년 · 하동태수

마초·한수가 반란할 때 하동 백성은 이심이 없었고 조조 군량이 하동에서 공급된다. 조조가 두기의 녹봉을 중이천석으로 올린다.

정사 두기전: 한수·마초의 반란 때 홍농·풍익은 호응했으나 하동은 이심이 없었다. 조조가 포판에서 위수를 끼고 대치할 때 군량은 하동에 의존했다. 조조는 두기의 녹봉을 중이천석으로 올렸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6 「軍食一仰河東」

224년 · 상서복야(맹진에서 시험 중 사망) · 대패

문제의 명으로 어루선을 만들다 맹진에서 시험하던 중 바람에 배가 전복되어 죽는다.

정사 두기전: 두기가 어루선을 만들라는 조서를 받고 맹진에서 시험하다 바람을 만나 침몰했다. 문제가 눈물을 흘리며 태복을 추증했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6 「受詔作御樓船,於陶河試船,遇風沒」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5위고·범선이 막은 섬진 나루를 단신으로 건너 범선·위고를 제압하고 3천 병력을 직접 관리했다(두기전).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이 없다.
지력79'한 달만 군에 머무르면 계책으로 묶을 수 있다'며 단신으로 하동에 들어가 위고·범선을 제압했다(두기전: 吾單車直往,出其不意).
정치90하동태수 16년간 천하 최고라 평가받았다. 소·말 사육, 학궁, 병무 교련으로 백성이 풍족해졌다(두기전).
매력78하동 백성은 한수 때도 이심이 없었고, 군량 운반자들이 '부군을 저버릴 수 없다' 하며 한 사람도 도망치지 않았다(두기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두기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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