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常林)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27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83세에 졸)

사망 227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명제 때 83세로 졸. 이 파일은 마지막 기록 연도(227)까지만 칸을 둠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90년온(왕광 휘하의 부정을 피해 상당으로 피난)추정
193년상당(상당에서 경작·진연 보루 수호)기록
211년업남화현령→박릉태수·유주자사기록
227년낙양광록훈·태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9년후한 조정(하내 온현 출신)불명
190년기타·재야(왕광 휘하의 부정을 피해 상당으로 피난)추정
191년기타·재야(왕광 휘하의 부정을 피해 상당으로 피난)불명
192년기타·재야(상당에서 경작·진연 보루 수호)불명
193년기타·재야(상당에서 경작·진연 보루 수호)기록
194~205년기타·재야(상당에서 경작·진연 보루 수호)불명
206~210년위남화현령→박릉태수·유주자사불명
211년위남화현령→박릉태수·유주자사기록
212~219년위오관장 공조→평원태수·위군동부도위·승상동조속불명
220~226년위상서→소부→대사농불명
227년위광록훈·태상기록

나온 사건·전투

190년 · (왕광 휘하의 부정을 피해 상당으로 피난)

태수 왕광이 숙부를 잡아 가두자 호모표에게 설득을 부탁해 숙부를 풀려나게 한다.

정사 상림전: 하내태수 왕광이 동탁 토벌을 위해 서생을 시켜 주민의 죄를 캐 재물로 속죄시키고 늦으면 종족을 죽이려 했는데, 상림의 숙부가 걸리자 상림이 왕광과 같은 현 사람인 호모표에게 가 이해를 설명해 숙부가 풀려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林乃避地上黨耕種山阿」 / 三國志 卷23 「彪即書責匡匡原林叔父」

193년 · (상당에서 경작·진연 보루 수호)

상당에서 진연의 보루를 포위 속에서 계책을 세워 지키게 한다.

정사 상림전: 가뭄과 메뚜기 속에서 상림만 풍작을 거두어 이웃과 나눴고, 진연의 보루에 의탁해 장양이 부녀와 재물을 탐내 60여 일 포위했을 때 종족을 이끌고 계책을 세워 끝내 보루를 온전히 지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林率其宗族爲之策謀見圍六十餘日卒全堡壁」

211년 · 남화현령→박릉태수·유주자사

전은·소백이 반란하자 오관장 조비가 친정하려 하니 "장군은 천하의 진을 맡는 분"이라며 만류한다.

정사 상림전: 조조 서정 중 전은·소백이 반란하자 조비가 친히 토벌하려 했고 오관장 공조 상림은 "북방 관리와 백성은 안정을 즐겨 선을 지키는 이가 많다. 전은·소백은 개와 양이 모였을 뿐이니 가볍게 멀리 움직이면 이겨도 무위가 아니다"라고 간해 조비가 따랐고 장수를 보내 곧 평정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銀伯犬羊相聚智小謀大不能爲害」 / 三國志 卷23 「文帝從之遣將往伐應時克滅」

227년 · 광록훈·태상

명제 때 사마의가 절하자 "절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일이 아니다"라며 받는다.

정사 상림전: 명제가 즉위하자 상림은 고양향후로 올라 광록훈·태상을 맡았고, 진 선왕 사마의가 상림을 향읍 노덕으로 대우해 늘 절하자 "사마공은 장유의 차례를 두터이 하려는 것"이라며 받았다. 83세에 졸해 정후 시호.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晉宣王以林鄉邑耆德每爲之拜」 / 三國志 卷23 「年八十三」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사 지휘 기록은 없다(상림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상림전).
지력75상당에서 피난 중 진연의 보루를 60여 일 포위 속에서 지키도록 계책을 세웠다(상림전).
정치80박릉태수·유주자사로서 치적을 올렸고 남화 현령으로 교화를 이루었다(상림전).
매력70사마의가 존중해 절했으나 "벼슬이 높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청렴하게 처신했다(상림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상림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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