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

[연재] 지분·지배구조 (4) × 112개 그룹으로 늘리며 만난 빈칸

연재 · 2026-08-05

네이버를 눌렀더니 화면이 텅 비었습니다

 

그룹을 하나씩 늘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삼성으로 시작해서 SK, 현대차, LG… 그러다 네이버를 넣고 화면을 열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왼쪽에 계열사 여섯 개가 목록으로 떠 있고, 오른쪽에 설명이 붙어 있는데, 가운데 관계도 자리가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화살표가 한 개도 없어요.

 

코드 문제인 줄 알고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아니었어요. DART에 그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이 연재의 × 편입니다. 112개 그룹을 넣으면서 만난 빈칸들, 그리고 그 빈칸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열 개 그룹은 화살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얼마나 되는지부터 세어봤습니다.

 

 

지분 화살표가 한 개도 없는 그룹이 열 개입니다. JYP, S-OIL, SPC, 네이버, 대방건설, 반도, 부영,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쿠팡. 화살표가 8개 미만인 곳까지 세면 112개 중 32개예요. 거의 세 그룹에 하나꼴입니다.

 

가장 허탈한 건 대방건설이었습니다.

 

 

왼쪽 목록을 보시면 계열사가 40개 있습니다. 대방산업개발, 노블랜드, 디비주택, 디아이건설… 이름을 다 찾아서 고유번호까지 붙여놨어요. 그런데 화살표는 0개입니다. 40개 회사가 서로 어떻게 엮여 있는지, 공시에는 한 줄도 없습니다.

 

왜 없는지는 그룹마다 다릅니다

 

빈칸을 하나씩 뜯어보니 이유가 몇 가지로 갈렸습니다.

 

첫째, 전부 비상장인 경우. 최대주주현황은 주로 상장사가 냅니다. 그룹 전체가 비상장이면 낼 의무가 있는 회사가 거의 없어요. 대방건설 40개사 중 상장사는 0개입니다. SPC도 9개 중 0개고요.

 

 

SPC 화면에는 아예 "공시된 총수 지분·지배구조 세부 정보 없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을 하는 그룹인데,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회사의 소유 구조를 공개된 자료로는 알 수가 없어요.

 

둘째, 주인이 밖에 있는 경우. 쿠팡은 미국 상장사가 한국 법인을 갖고 있는 구조입니다. 지배구조의 꼭대기가 DART 바깥에 있으니, 국내 공시를 아무리 뒤져도 위쪽이 안 나옵니다. S-OIL도 대주주가 사우디 쪽이라 비슷하고요.

 

 

쿠팡 화면에는 계열사가 16개 떠 있습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처럼 이름은 익숙한 회사들이에요. 그런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위에 누가 있는지는 한 줄도 안 나옵니다. 국내에서 이만한 규모로 사업하는 회사인데도요.

 

셋째, 총수가 없는 경우. KT&G는 화살표가 하나뿐입니다. 지분이 국민연금과 기관·외국인에게 널리 흩어져 있어서, 그릴 수 있는 '지배 사슬'이 애초에 없어요. 이건 데이터가 없는 게 아니라 구조가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화면이 빈 게 오히려 정답인 셈이죠.

 

빈 화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1. 데이터 없는 그룹은 목록에서 빼버린다 2. 다른 자료(뉴스, 기업정보 사이트)를 긁어와 채운다 3. 빈 채로 두고, 왜 비었는지를 적는다

 

1번을 오래 고민했습니다. 화면이 텅 빈 그룹이 열 개나 있으면 도구가 부실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빼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네이버와 쿠팡이 목록에 아예 없으면, 보는 사람은 '아직 안 만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공시가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보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정보인데, 그걸 지워버리는 셈입니다.

 

2번은 더 위험했습니다. 이 도구의 유일한 자산이 "DART에 적힌 것만 그린다"는 것이거든요. 여기에 출처가 다른 자료를 섞으면, 화면의 어느 숫자가 공시고 어느 숫자가 추정인지 아무도 못 가립니다. 섞는 순간 전체를 못 믿게 돼요.

 

그래서 3번으로 갔습니다. 빈 화면을 그대로 두고, 대신 오른쪽에 왜 비었는지를 적었습니다. "총수 지배구조 뚜렷하지 않음, 계열사 대부분 비상장" 이런 식으로요.

 

이 결정이 이 연재에서 제가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종류의 판단입니다. AI에게 "빈 그룹을 어떻게 할까"라고 물으면 그럴듯한 안을 여러 개 줍니다. 그런데 "빈 걸 보여주는 게 낫다"는 결론은 도구를 만든 사람의 몫이에요. 화면이 부실해 보이는 걸 감수하는 판단이니까요.

 

비슷한 유혹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화살표가 없으면 계열사들을 그냥 격자로 늘어놓아 화면을 채울 수도 있었어요. 보기엔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관계가 없다는 것과 관계를 모른다는 것이 같은 그림이 됩니다. 지분 도구에서 그 둘을 섞으면 안 되죠. 그래서 그냥 비워뒀습니다.

 

잘 나오는 그룹에도 구멍이 있습니다

 

빈칸은 이름 없는 그룹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제일 잘 나오는 삼성에도 있습니다.

 

삼성 계열사 66개 중 9개는 선이 하나도 안 붙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씨에스,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하만인터내셔널코리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이런 회사들이요. 삼성 계열인 건 분명한데, 누가 몇 퍼센트 갖고 있는지가 공시에 없습니다. 지분 100%짜리 자회사는 최대주주현황을 낼 의무가 없고, 모회사 쪽 출자 명세에도 안 잡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전체로 세어보면 1,879개 회사 중 677개가 이렇게 아무 데도 안 이어져 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넘어요. 처음 이 숫자를 뽑아보고 좀 놀랐습니다. 화면이 그럴듯해 보였던 건 이어진 것들만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지난 편에서 선 없는 회사는 그래프에서 빼고 목록에만 남긴다고 했는데,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이 구멍을 가려주고 있었던 겁니다. 화면은 정직한데 인상은 정직하지 않은, 좀 애매한 상태예요. 이건 아직 답을 못 찾았습니다.

 

자동화 사이에 남아 있는 손자국

 

이 도구는 대부분 자동으로 굴러갑니다. 그런데 코드를 열어보면 사람이 손으로 적어 넣은 목록이 군데군데 있어요.

 

 

'지배구조 핵심' 화면에 넣을 비상장사 여덟 개는 제가 골랐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나 삼성바이오에피스처럼, 상장은 안 했지만 구조상 빼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회사들이에요. '삼성생명보험 = 삼성생명' 같은 이름 예외도 손으로 적었고, 총수 일가 명단도 그렇습니다.

 

이걸 규칙으로 풀려고 여러 번 시도했어요. 매출 기준이라든가, 자회사 수 기준이라든가. 다 실패했습니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도 꼭 하나가 이상하게 걸려요. 결국 목록을 적는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끄러운 부분인데 굳이 적는 이유가 있습니다. AI로 만든 도구라고 해서 전부 자동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에요. 자동화된 뼈대 사이사이에 사람이 정한 예외가 박혀 있고, 그게 이 도구를 그나마 쓸 만하게 만듭니다. 다만 이런 목록은 늘어날수록 위험해요. 언젠가 세는 게 티가 납니다.

 

기준일도 제각각입니다

 

또 하나 정직하게 적어둘 게 있습니다. 모든 그룹의 데이터가 같은 시점 기준이 아닙니다.

 

 

112개 중 102개는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이라고 화면에 적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10개는 그냥 "최근 사업보고서 기준"이라고만 적혀 있어요. 최대주주현황이 안 잡혀서 언제 기준인지를 특정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냥 다 "2025년 기준"이라고 적어두면 화면이 깔끔하거든요.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확실한 것만 날짜를 적고, 아닌 것은 두루뭉술하게 적었습니다. 두루뭉술한 게 거짓말보다 낫습니다.

 

 

부영도 화살표가 0개입니다. 19개 계열사가 목록에만 있어요.

 

그룹의 경계는 누가 정하나

 

작업을 하면서 계속 걸렸던 질문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그 그룹인가?

 

이게 공시에 안 적혀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기업집단 지정을 하긴 하는데, 거기 목록과 사람들이 아는 '그룹'이 딱 맞지도 않고요. 결국 그룹마다 계열사 목록을 만드는 건 사람 몫이었습니다.

 

 

그룹 하나를 늘릴 때 이 다섯 단계를 밟는데, 2번이 제일 오래 걸립니다. 이름을 모으고, DART 고유번호를 찾아 붙이고, 업종을 정하고. AI가 초안을 잘 만들어주지만 마지막 확인은 늘 사람이 했어요. 엉뚱한 회사가 하나 섞여 들어가면 그 그룹 그림 전체가 틀어지니까요.

 

그래서 지금 화면에 있는 112개 그룹의 경계는, 엄밀히 말하면 제가 정한 것입니다. 공시가 정해준 게 아니에요. 이것도 화면 어딘가에 적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실제로 애매한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지주회사가 갈라지면서 사실상 두 집안이 된 그룹, 이름은 같은데 지분 관계가 끊어진 회사, 최근에 팔려서 다른 그룹에 붙은 계열사. 이런 걸 만날 때마다 "요즘 사람들은 이걸 어느 그룹으로 부르나"를 기준으로 정했어요. 데이터가 아니라 통념으로 정한 겁니다. 더 나은 기준을 아직 못 찾았습니다.

 

갱신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

 

만들 때는 생각 못 했는데, 다 만들고 나서 알게 된 비용이 있습니다. 이 화면은 언젠가 낡습니다.

 

사업보고서는 매년 새로 나오고, 지분은 사고팔리고, 계열사는 생기고 없어집니다. 그때마다 다시 수집해야 하는데, 이게 버튼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 회사 1,879개를 도는 데 DART 호출이 수천 번 나갑니다. 하루 한도가 있어서 나눠 돌려야 해요.
  • 그룹 경계를 넘는 지분을 다시 찾는 작업은 전체를 다시 훑어야 해서 몇 분씩 걸립니다.
  • 새 계열사가 생기면 이름을 찾아 고유번호를 붙이는 일이 또 사람 몫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지금은 화면 오른쪽 위에 기준 시점을 크게 적어두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낡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게 최소한의 정직이라고 생각해서요. 자동으로 매일 갱신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건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못 만든 것 하나

 

만들려다 접은 기능도 있습니다.

 

화살표를 누르면 그 지분과 관련된 신문 기사가 뜨게 하고 싶었어요. "KCC가 삼성물산 지분을 왜 갖고 있는가"는 숫자만 봐서는 절대 모르거든요. 2015년 합병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걸 붙이려면 기사를 실시간으로 가져와야 하고, 그러면 지난 편에서 이야기한 '파일 하나로 오프라인' 원칙이 깨집니다. 어떤 기사를 고를지도 문제고요. 골라주는 순간 그건 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접었습니다. 아쉽지만, 원칙을 하나 세워두면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기더라고요. 원칙이란 게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도구는 쓸 만한가

 

네 편에 걸쳐 지분 도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공시 세 개를 붙여야 회사 하나의 주인이 겨우 보이고
  • 곱하면서 내려가되 순환출자에서는 발을 끊어야 하고
  • 소유와 지배는 다른 숫자이며
  • 112개 그룹 중 32개는 그릴 것이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 항목이 이 도구의 정직한 한계예요. 이 화면은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DART에 공시된 만큼의 지배구조를 보여줍니다. 그 둘은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공시된 만큼이라도 한 화면에 모아둔 곳이 잘 없어서입니다. 기사에서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를 통해 지배한다"는 문장을 만나면, 이제 그 사슬을 퍼센트로 열어볼 수 있어요. 그게 이걸 만든 이유였고요.

 

네 편을 쓰면서 정리된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AI와 도구를 만들 때 사람이 하는 일은 대개 '무엇을 안 할지'를 정하는 쪽이더라고요. 애매한 이름은 이어붙이지 않기로 한 것, 100%가 넘는 숫자를 손으로 고치지 않기로 한 것, 다른 출처를 섞지 않기로 한 것, 빈 화면을 채우지 않기로 한 것. 이번 도구에서 제가 한 판단은 거의 다 이런 종류였습니다.

 

코드를 쓰는 속도는 이제 제 몫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을 넣지 않을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해야 하고, 그 결정이 도구를 믿을 만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빈칸도 그대로 남겨뒀습니다. 언젠가 공시 제도가 바뀌어 저 열 개 그룹의 화면이 채워지면, 그건 이 도구가 좋아진 게 아니라 세상이 조금 더 투명해진 것일 테고요.

 

다음 편

 

지분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편은 건설사 환경공시 도구예요. 여기서는 정반대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니라, 출처가 다른 두 자료가 서로 다른 숫자를 말해서 생긴 문제였어요. 그 둘을 절대 섞지 않기로 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분 구조는 victor-house.com/equit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학습·참고용이고, 투자 판단의 근거로 쓰라고 만든 것은 아닙니다.

 

#지분구조 #지배구조 #재벌 #대기업집단 #DART #전자공시 #공시제도 #비상장회사 #네이버 #쿠팡 #SPC #KT&G #대방건설 #부영 #기업정보 #데이터한계 #데이터품질 #투명성 #오픈데이터 #AI활용 #AI자동화 #클로드 #바이브코딩 #비개발자개발 #개인프로젝트 #사이드프로젝트 #도구만들기 #휴먼인더루프 #실패기록 #빅터하우스

댓글

    로그인 없이 쓰는 대신, 등록한 댓글은 직접 지울 수 없습니다. 지워야 할 댓글은 옆의 신고를 눌러주세요.
    네이버 블로그글 원문 보러가기 →유튜브 쇼츠만드는 장면 20초로 보기 →
    관리자 Victor · 문의는 우상단 신고·제안으로 남겨주세요.
    글과 화면은 정적 파일로 만듭니다. 댓글과 조회수만 외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합니다 — 개인정보처리방침

    오류 신고 · 제안

    관리자 Victor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