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개(呂凱)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180년경(추정)사망 225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180년경(추정) — 생년 불명(18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25년 — 연도 불명 — 제갈량 남정(225) 중 반이에게 피살(여개전). 225년경으로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5년남중운남태수·양천정후 → 반이에게 피살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15~222년촉한영창군 오관연·공조불명
223~224년촉한영창군 오관연·공조 — 국경을 닫아 옹개를 막음불명
225년촉한운남태수·양천정후 → 반이에게 피살기록

나온 사건·전투

223년 · 영창군 오관연·공조 — 국경을 닫아 옹개를 막음 · 수비

옹개가 오에 항복해 오가 옹개를 영창태수로 지명해도 부승 왕항과 함께 관리·백성을 이끌고 국경을 닫아 옹개를 막으며, 옹개의 격문에 반박하는 답서를 보낸다.

정사 여개전: 선주가 영안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옹개 등이 더욱 교만해졌다. 옹개가 오에 항복하자 오는 멀리서 여개를 영창태수에 임명했다. 영창은 익주군의 서쪽이라 촉과 길이 막혀 태수가 바뀌었는데, 여개는 부승 촉군 왕항과 함께 관리·백성을 독려해 국경을 닫고 옹개를 막았다. 옹개가 여러 번 격문을 보내자 여개가 답 격문으로 '지금 제갈 승상은 영재가 빼어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을 깊이 보며 탁고를 받았다'며 개를 설득했다. 위엄과 은혜가 안으로 드러나 군중이 믿었기에 그 절개를 온전히 했다.

연의: 연의 87회

출전: 三國志 卷43 본 「凱與府丞蜀郡王伉帥厲吏民閉境拒闓」

225년 · 운남태수·양천정후 → 반이에게 피살 · 피살

제갈량이 남정해 옹개가 고정의 부곡에게 피살된 뒤, 제갈량이 여개와 왕항의 충절을 표하여 여개를 운남태수·양천정후로 삼지만 얼마 안 있어 반이에게 피살된다.

정사 여개전: 승상 제갈량이 남정해 옹개를 토벌하러 길에 있을 때 옹개는 이미 고정의 부곡에게 죽은 뒤였다. 제갈량이 남쪽에 이르러 표를 올려 '영창군 관리 여개와 부승 왕항 등은 절역에서 충절을 지켜 십수 년, 옹개·고정이 동북을 핍박해도 의로움을 지키며 교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개를 운남태수로 삼고 양천정후에 봉했으나 마침 반이에게 피살되어 아들 여상이 이었다. 왕항도 정후에 봉해져 영창태수가 되었다.

연의: 연의 87회

출전: 三國志 卷43 본 「永昌郡吏呂凱府丞王伉等執忠絕域十有餘年雍闓高定逼其東北而凱等守義不與交通」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1군 지휘 기록은 없으나 부승 왕항과 관리·백성을 이끌고 국경을 닫아 옹개를 막았다(여개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
지력71옹개에게 보낸 격문에서 옛 일을 들어 조리 있게 설득했다(여개전).
정치63영창군 오관연·공조로서 군내 신망이 두터워 절개를 지킬 수 있었다(여개전).
매력74'위엄과 은혜가 안으로 드러나 군중이 믿었다'(여개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여개의 이동 경로

촉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