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269년경 '나이 70이 넘었다'고 말함).
사망 270년 — 태시 6년(270) 겨울, 병으로 낙양에서 죽음(초주전: 至冬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3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4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5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6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7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8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29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0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1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2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3년 | 성도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4년 | 오장원 | 권학종사(제갈량 사망 때 급히 달려감) | 기록 |
| 263년 | 성도 | 광록대부(항복 건의) | 기록 |
| 264년 | 한중 | (위 상국 사마소가 양성정후에 봉함, 한중에서 병으로 정지) | 기록 |
| 267년 | 낙양 | 기도위(낙양에서 병으로 사양) | 기록 |
| 268년 | 낙양 | 기도위(낙양에서 병으로 사양) | 기록 |
| 269년 | 낙양 | 기도위(낙양에서 병으로 사양) | 기록 |
| 270년 | 낙양 | 산기상시(사양, 사망)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22년 | 촉한 | (파서 서충국 출신, 학문 연마, 연대 불명) | 불명 |
| 223~233년 | 촉한 | 권학종사(승상 제갈량 아래) | 추정 |
| 234년 | 촉한 | 권학종사(제갈량 사망 때 급히 달려감) | 기록 |
| 235~262년 | 촉한 | 전학종사 → 태자복·가령 → 중산대부 → 광록대부 | 불명 |
| 263년 | 촉한 | 광록대부(항복 건의) | 기록 |
| 264년 | 진(晉) | (위 상국 사마소가 양성정후에 봉함, 한중에서 병으로 정지) | 기록 |
| 265~266년 | 진(晉) | (촉에 머묾) | 불명 |
| 267~269년 | 진(晉) | 기도위(낙양에서 병으로 사양) | 기록 |
| 270년 | 진(晉) | 산기상시(사양, 사망) | 기록 |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곧바로 달려간다. 금지 조서가 내렸으나 서둘러 간 초주만 도착한다.
정사 초주전: 제갈량이 적진에서 죽자 초주는 집에서 소식을 듣고 곧 달려갔다. 곧 금지 조서가 내려졌으나 초주는 빨리 가서 도착할 수 있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亮卒於敵庭,周在家聞問,即便奔赴」
등애가 음평으로 들어와 성도가 흔들릴 때 오로 가거나 남중으로 가자는 안을 반대하고 위에 항복하자고 주장해 후주가 따른다.
정사 초주전: 경요 6년 겨울 등애가 강유를 깨고 쳐들어오자 대신들이 오로 달아나거나 남중으로 가자 했다. 초주만이 '남은 땅의 다른 나라로 가서 천자 노릇을 한 사람은 없다'며 위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고, 후주가 초주의 계책을 따랐다.
연의: 연의 118회 — 연의 118회가 초주의 항복 건의를 극화한다.
관련: 면죽 전투와 촉한의 항복
출전: 三國志 卷42 「於是遂從周策。劉氏無虞,一邦蒙賴,周之謀也」
위 상국 사마소가 전국을 보전한 공이라며 양성정후에 봉하고 불렀으나, 한중에 이르러 병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정사 초주전: 진 문왕이 초주의 '전국을 보존한 공'을 들어 양성정후에 봉하고 글로 불렀다. 초주는 한중까지 갔으나 병이 심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以周有全國之功,封陽城亭侯」
산기상시로 임명되었으나 병이 깊어 받지 못하고 그해 겨울에 죽는다.
정사 초주전: 태시 6년 가을 산기상시가 되었으나 병이 위독해 받지 못했고 겨울에 죽었다. 저술 '법훈', '오경론', '고사고' 등 100여 편을 남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六年秋,為散騎常侍,疾篤不拜,至冬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이 없다.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이 없다. |
| 지력 | 89 | 태학자로 천문을 알았고 '구국론'을 썼다. 촉한 멸망 때 남중 도피 대신 위에 항복하는 안을 설득했다(초주전). |
| 정치 | 70 | 권학종사·전학종사로 촉의 학문을 총괄했다. 후주의 유람 확대를 간하는 상소를 올렸다(초주전). |
| 매력 | 62 | 공이 없는데 봉해졌다며 작위를 반환하려 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초주전). 몸이 8척에 소박하고 거짓 없는 성품이라 기록된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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