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19년 — 사망 연도 불명 — 마지막 기록인 219년 손권 투항을 기준으로 둠(미축전·관우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0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1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2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3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4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5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6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7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8년 | 강릉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9년 | 강릉 | 남군태수 → 손권에게 투항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4~208년 | 촉한 | 팽성상 → 조조 표천으로 관직을 버리고 선주를 따름 | 불명 |
| 209~218년 | 촉한 | 남군태수(강릉) | 추정 |
| 219년 | 오 | 남군태수 → 손권에게 투항 | 기록 |
남군태수로서 공안의 사인과 함께 관우의 군량 공급을 소홀히 하다가, 관우가 '돌아와 다스리겠다'고 하자 두려워 손권의 유인에 응해 강릉을 넘긴다.
정사 관우전: 남군태수 미방은 강릉에, 장군 사인은 공안에 주둔했는데 둘 다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가볍게 여긴다고 못마땅해했다. 관우의 출군 때 군수 공급을 제대로 돕지 않아 관우가 '돌아가면 다스리겠다'고 하자 두려워했다. 손권이 몰래 두 사람을 유인하자 이들이 사람을 보내 손권을 맞이했다.
연의: 연의 76회 — 연의 76회도 미방·부사인의 투항을 다루나, 연의는 공안·남군이 함락되는 장면을 길게 서술한다.
출전: 三國志 卷36 본 「又南郡太守麋芳在江陵將軍士仁屯公安素皆嫌羽輕己羽之出軍芳仁供給軍資不悉相救羽言還當治之芳仁咸懷懼不安於是權陰誘芳仁芳仁使人迎權」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남군태수로서 관우의 군수 공급을 도왔으나 사적 불화로 완전히 돕지 않았다(미축전·관우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평가 불가 | 지략 기록 없음. |
| 정치 | 50 | 남군태수로 강릉을 지키다 관우의 '돌아와 다스리겠다' 말에 불안해 투항했다(관우전). |
| 매력 | 50 | 관우가 '경시한다'고 불만을 샀다(관우전). 성미가 맞지 않았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미방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