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설명해 달랬더니 웹페이지를 만들어 왔습니다 —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어려운 조수
하루에 세 번
어느 날 하루 동안 조수가 한 일을 적어 봤습니다. 제가 시킨 것과 조수가 한 것을 나란히요.
| 제가 시킨 것 | 조수가 한 것 |
|---|---|
| "이런 투로 풀어서 설명해 봐" | 문서를 쓰고, 디자인 규칙까지 찾아 읽고, 47KB짜리 웹페이지를 만들고, 편집기를 열었다 |
| (시킨 것 없음) | 제 컴퓨터에 미리보기용 프로그램을 하나 켜 두었다 |
| "현황판 오류 다 잡아" | 현황판을 고치고, 다른 프로젝트 여덟 개도 고쳤다 |
셋 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설명을 더 잘 보여 주려고, 확인하기 편하려고, 보이는 오류를 그냥 두기 싫어서. 그런데 결과는 제가 뒷정리를 하는 거였습니다. 만들어진 페이지를 닫고, 켜 둔 프로그램을 끄고, 손댄 여덟 곳이 멀쩡한지 하나씩 확인하고요.
그날 제가 조수에게 한 말이 있어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신입사원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거야. 나는 그 뒤치다꺼리하다가 시간을 많이 뺏기고."

오늘도 한 번
이건 지난 일이 아닙니다. 이 글을 준비하던 날에도 있었어요.
저는 그냥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대화를 새로 띄우면 쌓인 게 다 없어지는 거지?" 조수는 맞다고 답하고는, 제가 한 말끝을 지시로 받아들였어요. 제가 쓰는 도구의 설정을 "매번 새로 띄우도록" 바꾸고, 백업을 만들고, 기록까지 남겼습니다.
"아니야, 그냥 계속 써도 되는데. 그 개념이 궁금했던 거야."
조수는 바로 되돌렸어요. 되돌리는 건 금방입니다. 문제는 제가 매번 조수가 뭘 바꿨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골키퍼는 왜 몸을 날릴까
2007년 바엘리와 동료들이 축구 페널티킥 수백 개를 분석했습니다. 공이 날아간 방향과 골키퍼가 몸을 날린 방향을 셌어요.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수치로 보면 골키퍼가 가운데 그대로 서 있을 때 막는 비율이 제일 높았어요. 그런데 골키퍼들은 거의 언제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요.
연구자들은 이걸 행동 편향이라고 불렀어요. 가만히 있다가 먹히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비난을 받지만, 몸을 날렸다가 먹히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결과가 같아도 무언가 한 쪽이 덜 후회스럽고 덜 비난받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게 나은 순간에도 움직입니다.

조수에게는 "가만히"가 없습니다
조수 쪽에서 보면 이 편향은 더 셉니다. 조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라고 만들어진 존재예요. 질문을 받으면 답을 쓰고, 일을 받으면 결과물을 냅니다. "여기서 멈추는 게 맞다"는 선택지가 조수의 기본 동작에는 잘 없어요.
그리고 조수의 눈에는 더 한 것이 늘 더 좋은 답처럼 보입니다. 설명만 하는 것보다 페이지까지 만든 쪽이, 한 곳을 고치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다 고친 쪽이 더 성실해 보이니까요. 골키퍼가 몸을 날리듯, 조수는 손을 뻗습니다.
재미있는 건 조수 스스로는 이걸 잘 못 센다는 거예요. 제 사고 기록장에는 "시키지 않은 일"이라는 칸이 따로 있습니다. 그날 세 번이나 있었는데, 그 칸에 적힌 건 그때까지 두 건뿐이었어요. 그날 세 건은 제가 짚은 뒤에야 적혔습니다. 조수에게 시키지 않은 일은 잘못으로 안 보이고, 도움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안 시킨 일은 안 한다"를 첫 줄에
조수에게 주는 규칙에는 이제 이 줄이 맨 앞쪽에 있습니다. "안 시킨 일은 안 한다." 6편에서 말했듯 문장만으로는 약하니, 장치도 붙였어요.
하나. "그 김에"를 금지했습니다. 하라는 일을 하다가 다른 걸 발견하면, 고치지 말고 맨 끝에 "덧붙임:" 한 줄로 남기게 했어요. 고칠지는 제가 정합니다.
둘. 질문과 지시를 가르게 했습니다. 제 말끝이 물음표면 답만 합니다. 저는 궁금한 걸 물었을 뿐인데 조수가 일을 벌이는 건, 대부분 이 경계가 흐려서 생기더라고요.
셋. 바꾼 파일을 목록으로 내게 했습니다. 무엇을 바꿨는지 제가 찾아다니지 않게요.
오늘 해 볼 한 가지
AI에게 일을 맡길 때 "이것만 해 줘. 다른 게 보이면 고치지 말고 알려만 줘"를 한 줄 붙여 보세요. 유능한 신입일수록 가만히 있는 법을 따로 알려 줘야 합니다. 몸을 날리는 게 성실해 보이는 건 골키퍼나 조수나 같거든요.
다음 편은 조수가 제 의견에 "대응"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한마디 하면 조수가 한마디 더 붙이던 시절과, 버전이 바뀌고 그게 사라진 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