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or

[연재] 폰에서 시키기 (2) 아낄 걱정을 했는데 아낄 게 없었습니다

연재 · 2026-08-09

"ok" 한 마디를 받는 데 270원이 들었습니다

 

폰에서 맥에 말을 걸 수 있게 만들어놓고, 제일 먼저 걱정된 게 돈이었습니다.

 

폰은 손에 들려 있잖아요. 앞으로 하루에 몇십 번씩 던지게 될 텐데, 그게 쌓이면 감당이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재보기로 했습니다.

 

제일 사소한 걸 시켰습니다. "ok 라고만 답해."

 

돌아온 답은 ok 두 글자였습니다. 그런데 값은 이랬어요.

 

무엇분량
새로 읽은 것18,077
기억해둔 것에서 읽은 것15,273
제가 실제로 보낸 말2
돌아온 답4
환산 금액약 270원

 

제가 보낸 건 두 글자, 받은 건 두 글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3만 3천 분량이 지나갔습니다.

 

 

270원이면 한 번은 우습습니다. 그런데 하루 50번이면 만 삼천 원이에요. 한 달이면 40만 원입니다. "이건 못 쓰겠다" 가 첫 반응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계산이 어떻게 뒤집혔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가 단위를 잘못 보고 있었어요.

 

 

말을 걸 때마다 먼저 읽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3만 3천이 어디서 나왔는지부터요.

 

제가 "ok 라고 답해" 를 보내기 전에, 읽혀야 하는 것들이 먼저 있습니다.

 

  •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적어둔 규칙 문서
  • 지금까지 정해둔 것들을 모아둔 기억 문서
  • 쓸 수 있는 도구들의 설명서
  • 폴더 구조와 현재 상태

 

이게 매번 앞에 붙습니다. 제가 두 글자를 보내든 두 페이지를 보내든, 앞에 붙는 3만 3천은 그대로예요.

 

사람으로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신입이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회사 규정집, 업무 인수인계서, 장비 사용법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나서 일을 시작하는 거예요. "오늘 날씨 어때요?" 라고 물어도 그 앞에 규정집 읽기가 붙습니다.

 

그러니까 짧은 질문이 특히 비쌉니다. 질문이 짧아도 밑밥은 그대로니까요.

 

 

5분이 갈림길이었습니다

 

여기에 장치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한 번 읽은 건 5분 동안 기억해둡니다. 5분 안에 또 말을 걸면 규정집을 다시 읽지 않고, 기억해둔 걸 꺼내 씁니다. 그럼 값이 10분의 1로 떨어져요.

 

이게 화면 앞에서 일할 때랑 폰에서 던질 때를 갈라놓습니다.

 

화면 앞에서는 연달아 대화합니다. 물어보고, 답 보고, 또 물어보고요. 간격이 몇십 초라 기억이 계속 살아 있어요. 그래서 처음 한 번만 제값을 내고 나머지는 싸게 갑니다.

 

폰에서는 간격이 길어요. 아침에 한 번 묻고, 점심에 한 번 묻고, 저녁에 한 번 묻습니다. 5분은커녕 몇 시간씩 벌어져요. 그러니까 매번 규정집부터 다시 읽습니다.

 

같은 질문인데 화면 앞에서 하면 20원, 폰에서 하면 270원. 계산상 10배가 넘습니다.

 

여기까지 재보고 저는 이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폰에서는 아껴 써야 한다. 아끼는 장치를 넣자.

 

이게 틀린 결론이었습니다.

 

 

한 주 전체를 놓고 보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제가 쓰는 요금제에는 한 주에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돈으로 청구되는 게 아니라 그 양을 나눠 쓰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지난 몇 주를 실제로 얼마나 썼는지 꺼내봤습니다. 제가 만든 현황판이 이걸 계속 쌓고 있었거든요.

 

그 주에 쓴 비율
6월 넷째 주14%
7월 첫째 주6%
7월 둘째 주20%
7월 셋째 주34%
7월 넷째 주49%

 

늘고 있긴 한데, 아직 절반입니다. 그럼 폰에서 던지는 게 여기에 얼마를 얹을까요?

 

계산해 봤습니다. 가장 무거운 모델로, 하루 100개씩, 일주일 내내 던지면요.

 

한 주의 2.5%였습니다.

 

49%에 2.5%를 얹으면 51.5%입니다. 하루에 100개를 던져도요. 한도가 차려면 하루에 2,000개를 보내야 합니다.

 

 

여기서 제 얼굴이 좀 뜨거웠습니다. 저는 방금 "하루 50개면 만 삼천 원" 이라고 계산해놓고 못 쓰겠다고 했잖아요. 금액으로는 맞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부딪히는 벽은 금액이 아니라 한 주에 쓸 수 있는 양이었어요.

 

같은 사실을 두 단위로 보면 결론이 반대로 나옵니다.

 

  • 돈으로 보면 짧은 질문 하나가 270원 — 비싸다
  • 한도로 보면 짧은 질문 하나가 한 주의 0.004% — 없는 것과 같다

 

저는 제가 내지도 않는 청구서를 걱정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럼 49%는 누가 썼나

 

그러면 궁금해지잖아요. 짧은 질문이 그렇게 싸다면, 7월 넷째 주의 49%는 누가 쓴 건가요?

 

이것도 현황판에 남아 있었습니다. 화면 앞에 앉아서 시킨 작업 한 건이 한 주의 0.3%에서 4.2%를 씁니다. 도구를 새로 만들거나, 데이터를 다시 긁거나, 구조를 뜯어고치는 그런 일들요.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무엇한 주에서 차지하는 몫
짧은 질문 하나0.004%
짧은 질문 100개 × 7일2.5%
무거운 작업 한 건0.3 ~ 4.2%

 

무거운 작업 한 건이 짧은 질문 700개와 맞먹습니다.

 

49%를 만든 건 이쪽이었어요. 제가 밖에서 폰으로 뭘 물어보는 것 때문에 한도가 차는 게 아니라, 앉아서 도구를 만드는 것 때문에 차고 있었습니다.

 

 

절약 장치를 빼고, 마찰 장치를 넣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니 만들어야 할 게 바뀌었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건 아끼는 장치였어요. 답을 짧게 자르고, 대화를 자동으로 끊고, 이어붙이지 못하게 막고요. 그런데 아낄 게 없다면 이건 다 쓸데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일일 뿐입니다.

 

진짜 위험한 경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폰에서 무거운 작업을 시키는 것이요.

 

이게 왜 위험하냐면요. 앉아서 시킬 때는 그 일이 무거운 걸 알고 시킵니다. 준비하고, 확인하고, 화면을 보면서요. 그런데 누워서는 가볍게 던집니다. "이거 싹 정리해봐" 가 한 줄이잖아요. 던지는 건 한 줄인데 값은 짧은 질문 700개입니다.

 

그래서 넣은 게 마찰입니다.

 

폰에서 온 말을 먼저 한 번 훑어서, 고치는 일인지 물어보는 일인지 갈랐습니다. 갈라내는 데는 제일 가벼운 모델을 씁니다. 이 판정 한 번이 한 주의 0.00005%예요. 사실상 공짜입니다.

 

물어보는 일이면 바로 답합니다. 고치는 일이면 실행하지 않고 되묻습니다.

 

⚠️ 무거운 작업으로 보입니다

  요청: 스위치 데이터 다시 긁어서 배포
  예상: 한 주의 1~4%

  [ 진행 ]   [ 취소 ]   [ 읽기만 ]

 

버튼 세 개 중에 "읽기만" 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건 실제로 손대지 않고 무엇을 하게 될지만 알려달라는 겁니다.

 

누워서 던진 게 진짜 지금 해야 하는 일인지, 저도 잘 모르거든요. 그 판단을 하려면 재료가 필요한데, 진행/취소만 있으면 재료 없이 골라야 합니다. "읽기만" 을 누르면 무엇을 건드릴 건지 목록을 받고, 그걸 보고 나서 정할 수 있어요.

 

 

살아남은 절약 하나

 

아끼는 장치를 다 뺐다고 했는데, 하나는 남겼습니다.

 

기본 모델을 가벼운 쪽으로 두는 것이요.

 

같은 질문을 무거운 모델에 물으면 가벼운 모델의 5배를 씁니다. 그런데 "오늘 배포 나갔어?" 같은 질문에 무거운 모델은 과해요. 그래서 기본은 가벼운 쪽으로 두고, 어려운 걸 물을 때만 올려 쓰게 했습니다.

 

이건 아끼려고 남긴 게 아니라 답이 빨라서 남겼습니다. 폰에서는 5초와 20초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리고 재보다가 알게 된 게 하나 있어요. 모델을 바꿔도 대화가 끊기지 않습니다. 가벼운 모델에게 숫자를 하나 기억시키고 무거운 모델로 바꿔서 물어봤더니 맞게 답했어요. 그러니까 가볍게 묻다가 어려워지면 그 자리에서 올려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새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재보기 전까지는 확신했습니다

 

이번 편에서 제가 남기고 싶은 건 숫자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저는 "폰에서 쓰면 비싸다" 를 꽤 확신했어요. 근거도 있었습니다. 270원, 10배, 하루 50개면 만 삼천 원. 다 맞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로 결정을 내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제가 부딪히는 벽이 그 단위가 아니었으니까요.

 

만약 재보지 않고 그대로 만들었으면 이렇게 됐을 겁니다. 폰에서 답이 자꾸 짧게 잘리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이유는 있는데 불편하고요. 그러면서 정작 위험한 경로 — 누워서 무거운 작업을 던지는 것 — 는 그대로 열려 있었을 겁니다. 불편하기만 하고 안 막힌 상태요.

 

현황판이 그동안 쌓아둔 기록이 여기서 값을 했습니다. 만들 때는 "얼마 썼나 보려고" 만든 거였는데,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는 용도로 쓰였어요.

 

 

다음 편은 좀 더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폰에서 던진 게 바로 실행되는 게 무서워서 "읽기만 해봐" 를 만들어 걸어뒀는데요. 확인차 셸 명령을 시켜봤더니 그게 그대로 실행됐습니다. 자물쇠를 걸어둔 줄 알았는데 잠겨 있지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 그리고 범인이 누구였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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