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이패드에서 붙기 — 내가 연 건 하나인데 셋이 떠 있었습니다
현황판을 열었더니 터미널이 셋이었습니다
제 작업 현황판에는 지금 뭐가 돌고 있는지가 뜹니다. 어느 날 오후에 무심코 열었더니 터미널이 세 개로 잡혀 있었어요.
저는 하나만 열었습니다.
처음엔 화면이 잘못 센 줄 알았습니다. 숫자를 세는 쪽이 틀렸겠거니 했죠. 그런데 하나씩 따라가 보니 화면은 정확했습니다. 나머지 둘은 전날 아이패드에서 띄워놓은 것들이었고, 아이패드는 이미 덮어서 가방에 넣었는데, 맥 안에서는 여전히 돌고 있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안 죽게 만들어 놓은 게 제 손이었거든요. 정확히 그 전날에요.
오늘은 아이패드에서 맥에 붙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고 나서 무엇이 안 보이게 됐는지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화면을 통째로 옮기는 게 답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원격 데스크톱을 썼습니다. 맥 화면을 아이패드로 그대로 가져와서, 마치 맥 앞에 앉은 것처럼 쓰는 방식이에요. 연재 초반에 장비 이야기를 하면서 이걸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잘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게 눈에 밟혔습니다.
제가 밖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글자 몇 줄입니다. 뭐가 도는지 보고, 한 줄 시키고, 결과를 읽는 것. 그런데 원격 데스크톱은 그 몇 줄을 보려고 화면 전체를 통째로 옮깁니다. 배경화면도, 창 테두리도, 안 보는 아이콘도 다 같이 건너와요.
그러다 보니 이런 게 계속 걸립니다.
- 27인치 화면을 11인치로 줄여 받으니 글자가 작습니다. 확대하면 이번엔 화면이 좁아요.
- 커서를 손가락으로 옮겨야 합니다. 터미널에서 한 글자 고치려고 손가락으로 조준하고 있으면 좀 우습습니다.
- 무엇보다, 제가 필요한 건 글자인데 그림을 받고 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필요한 게 글자면 글자만 받으면 되잖아요. 그래서 화면을 옮기는 방식 대신, 아이패드에서 맥의 터미널에 직접 붙는 쪽으로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현관을 열지 않고 사잇길을 냈습니다
집 밖에서 집 안의 컴퓨터에 붙으려면, 보통은 공유기에 문을 하나 열어줘야 합니다. 이걸 흔히 포트를 연다고 하죠.
여기서 한 번 멈췄습니다. 그 문은 저한테만 열리는 게 아닙니다. 인터넷 전체를 향해 열립니다. 열어두면 온 세상의 자동 프로그램들이 하루 종일 문고리를 돌려봅니다. 사람이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기계가 인터넷 주소를 순서대로 훑으면서 열린 문을 찾아다녀요.
제 맥에는 지금 도구 코드와 글 원고와 계정 설정이 다 들어 있습니다. 편하자고 그 문을 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여는 대신 사잇길을 냈습니다. 요즘은 이런 걸 대신 해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내 기기들끼리만 서로 보이는 작은 사설망을 만들어 주는 방식입니다.
- 인터넷 쪽에서 보면 제 맥에는 아무 문도 열려 있지 않습니다.
- 대신 제 계정으로 로그인한 기기들끼리는 서로 바로 보입니다.
- 지금 여기에 맥과 태블릿과 폰, 세 대가 물려 있습니다.
원리를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대문을 열어두고 아무나 들어오게 하는 대신, 아는 사람에게만 뒷길 열쇠를 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뒷길은 인터넷 지도에는 아예 안 나옵니다.
이걸 깔고 나니 밖에서 아이패드로 맥에 붙는 게 그냥 됐습니다. 카페에서든 지하철에서든, 셀룰러만 터지면 붙습니다.

덮으면 죽는다는 걸 그날 알았습니다
붙는 건 됐는데, 첫날 바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밖에서 작업을 하나 걸어놨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어요. 이동해야 해서 아이패드를 덮었고, 도착해서 다시 열었더니 — 하던 게 사라져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터미널로 붙는다는 건 전화를 거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화가 끊기면 통화가 끝나죠. 제가 걸어둔 작업은 그 통화 안에서 돌고 있었으니 같이 끝난 겁니다. 아이패드를 덮는 순간, 셀룰러가 잠깐 끊기는 순간, 지하철이 터널에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렇습니다.
밖에서 쓰겠다고 만든 자리인데 밖에서는 이동을 하잖아요. 이동하면 끊깁니다. 이건 못 쓰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프로그램을 하나 깔았습니다. 하는 일은 한 문장으로 설명됩니다.
작업을 통화 안이 아니라 맥 안의 방에 넣어두는 것.
제가 붙어서 방을 하나 만들고, 그 방 안에서 일을 시킵니다. 전화가 끊겨도 방은 맥 안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일도 계속 돌아갑니다. 나중에 다시 붙어서 그 방 문을 열면, 하던 화면이 그대로 있습니다. 커서 위치까지요.
지하철에서 시켜놓고, 내려서 열어보면 끝나 있습니다. 이게 되고 나서야 밖에서 쓸 만해졌습니다.

한글이 깨지고 색이 뭉개졌습니다
붙는 것도 되고 안 죽는 것도 됐는데, 화면이 이상했습니다.
한글이 깨져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색이 뭉개져서, 어디가 강조된 글자고 어디가 그냥 글자인지 구분이 안 갔어요.
이유는 이랬습니다. 아이패드의 터미널 앱이 맥에게 자기 소개를 제대로 못 한 겁니다. "나는 한글도 나오고 색도 256가지 나오는 화면이야" 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니까, 맥은 옛날 흑백 터미널인 줄 알고 거기에 맞춰 글자를 보냈습니다. 받는 쪽은 요즘 화면인데 보내는 쪽이 옛날 기준으로 보낸 거죠.
고치는 건 설정 파일에 세 줄 적는 일이었습니다. 글자는 한글이 되는 방식으로 주고받고, 화면은 색이 나오는 종류라고 알려주는 것. 그게 전부였어요.
시시하게 들리는데 이런 게 제일 오래 잡아먹습니다. 안 되는 이유가 코드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걸 가정하고 있는 데 있어서, 코드를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와요. 결국 "지금 이 화면이 뭐라고 알려지고 있나"를 확인하고서야 풀렸습니다.

안 죽게 만들었더니, 안 보이게 됐습니다
여기까지가 전날 한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현황판에 터미널이 셋으로 잡혔습니다.
따라가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어디서 띄운 것 | 상태 | |
|---|---|---|
| ① | 내가 방금 연 터미널 | 눈앞에 보임 |
| ② | 전날 아이패드에서 띄운 것 | 접속은 끊김 · 계속 돌고 있음 |
| ③ | 전날 아이패드에서 띄운 것 | 접속은 끊김 · 계속 돌고 있음 |
②와 ③은 전날 밖에서 작업을 시켜놓은 것들이었습니다. 아이패드를 덮었으니 제 쪽에서는 끝난 일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바로 전날 끊겨도 안 죽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니 안 죽었죠. 정확히 제가 시킨 대로 된 겁니다.

이게 왜 마음에 걸렸냐면요.
그 안에서 도는 게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AI에게 맡긴 작업입니다. 파일을 읽고 고치고, 쓸 때마다 사용량이 붙습니다. 제가 안 보는 사이에 그게 돌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다만 지우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했어요. 대화 기록의 번호를 적어뒀습니다. 방을 없애면 그 안의 작업도 같이 사라지는데, 기록 자체는 파일로 남아 있어서 나중에 그 번호로 다시 불러올 수 있거든요. 끊긴 자리에서 이어서 시킬 수 있습니다.
정리하고 나니 현황판에는 제가 연 것만 남았습니다. 유령이 없어진 거죠.

편해진 만큼 안 보이게 된다는 것
이 편에서 제가 얻은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밖에서 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문을 열지 않고 사잇길로 붙고, 끊겨도 일이 안 죽습니다. 이건 확실히 좋아졌어요.
다른 하나는 좀 다릅니다. 끊겨도 안 죽는다는 건, 내가 잊어도 안 죽는다는 뜻입니다. 이 둘은 같은 말이에요. 편의를 하나 얻으면 가시성을 하나 내주게 됩니다. 공짜로 좋아지는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규칙을 두 개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습관에 가깝습니다.
- 붙으면 먼저 방 목록부터 봅니다. 새로 만들기 전에 뭐가 남아 있는지 확인합니다.
- 방에 이름을 붙입니다. 그냥 두면 번호로만 남아서, 나중에 보면 이게 뭐였는지 모릅니다. 이름이 있어야 "아 이건 지워도 되겠다"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걸 알아챈 건 현황판이었습니다. 뭐가 도는지 세어주는 화면이 없었으면 저는 몰랐을 겁니다. 도구가 늘어나면 도구를 보는 도구가 필요해진다는 걸 이때 확실히 느꼈어요. 그 화면을 왜 만들었는지는 뒤에 따로 적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아이패드로 앉는 자리를 만든 이야기입니다. 앉을 자리가 생기니 다음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이패드를 꺼내는 것도 귀찮아졌거든요. 주머니에 있는 폰으로 그냥 말을 걸 수는 없을까. 다음 세 편은 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