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黃權)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75년경(추정)사망 240년기록 연도 12해

생몰

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40년 — 위 정시 원년(240) 졸 — 본문 '明年卒'(경초 3년·연희 2년 이듬해)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1년성도주부 — 선주 영입에 반대기록
214년성도편장군기록
215년한중호군 — 장로를 맞이하러 파중으로기록
219년성도치중종사기록
220년성도치중종사추정
221년이릉진북장군·독강북군기록
222년이릉진북장군 → 위에 항복기록
223년허창진남장군·육양후·시중기록
224년허창진남장군·육양후·시중기록
225년허창진남장군·육양후·시중기록
226년허창진남장군·육양후·시중기록
227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28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29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0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1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2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3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4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5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6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7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8년낙양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9년낙양거기장군·의동삼사기록
240년낙양거기장군·의동삼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0~210년유장·익주주부불명
211년유장·익주주부 — 선주 영입에 반대기록
212년유장·익주광한장불명
213년유장·익주광한장 — 성을 굳게 지키다 유장 항복 뒤 투항불명
214년촉한편장군기록
215년촉한호군 — 장로를 맞이하러 파중으로기록
216~218년촉한호군불명
219년촉한치중종사기록
220년촉한치중종사추정
221년촉한진북장군·독강북군기록
222년촉한진북장군 → 위에 항복기록
223~226년위진남장군·육양후·시중기록
227~238년위익주자사 영(遙領) → 하남 이주추정
239~240년위거기장군·의동삼사기록

나온 사건·전투

211년 · 주부 — 선주 영입에 반대 · 간언

별가 장송이 선주 영입을 건의하자 '좌장군은 효명(驍名)이 있어 부곡으로 대하면 불만이고 빈객으로 대하면 한 나라에 두 임금이 된다, 다만 국경을 닫고 하청을 기다리라'고 간하나 유장이 듣지 않는다.

정사 황권전: 유장이 주부로 불렀다. 별가 장송이 선주를 맞이해 장로를 치게 하자고 건의하자 황권이 '좌장군은 용맹하다는 이름이 있어 부곡으로 대하면 마음에 차지 않고 빈객으로 대하면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용납되지 않으니, 이를 받으면 태산의 안정이 있어도 주군에게 누란의 위험이 있다. 다만 국경을 닫고 하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자'고 간했다. 유장은 듣지 않고 선주를 영접하게 하고 황권을 광한장으로 내보냈다.

연의: 연의 60회

출전: 三國志 卷43 본 「左將軍有驍名今請到欲以部曲遇之則不滿其心欲以賓客禮待則一國不容二君」

215년 · 호군 — 장로를 맞이하러 파중으로 · 계책

조조가 장로를 깨자 '한중을 잃으면 삼파가 흔들린다'고 건의해 호군으로 장로를 맞이하러 가나 장로는 이미 남정에 돌아가 조조에게 항복한 뒤였다. 이후 두호·박호를 깨고 하후연을 벤 것까지 모두 황권의 본모였다.

정사 황권전: 조조가 장로를 깨자 장로가 파중으로 달아났다. 황권이 '한중을 잃으면 삼파가 진작되지 못하니 이는 촉의 팔다리를 베이는 것'이라고 건의했다. 선주는 황권을 호군으로 삼아 제장을 이끌고 장로를 맞이하게 했으나 장로는 이미 남정에 돌아가 조조에게 항복한 뒤였다. 그러나 두호·박호를 깨고 하후연을 죽여 한중을 차지한 일이 모두 황권의 본모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3 본 「若失漢中則三巴不振此為割蜀之股臂也」

222년 · 진북장군 → 위에 항복 · 투항

선주의 동정 때 '오인은 사나운 싸움꾼, 수군이 물길을 타면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다. 신이 선봉이 되겠다'고 간한다. 이릉 패전 뒤 퇴로가 끊겨 군을 이끌고 위에 항복하나 선주는 가족을 벌하지 않았다.

정사 황권전: 선주가 오를 치려 하자 황권이 '오인은 사납게 싸우고 수군이 순류를 타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가 어려우니, 신이 선봉이 되어 적을 막겠으니 폐하는 후진에 계십시오'라 했으나 선주는 따르지 않고 황권을 진북장군 독강북군으로 삼았다. 오의 육손이 흐름을 타 포위를 끊고 남군이 패하자 길이 막혀 황권은 돌아오지 못하고 군을 이끌고 위에 항복했다. 유사가 처자를 잡으려 하자 선주는 '내가 황권을 저버렸지 황권이 나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라며 처음처럼 대했다.

연의: 연의 85회

관련: 이릉 전투, 육손의 화공

출전: 三國志 卷43 본 「孤負黃權權不負孤也待之如初」

240년 · 거기장군·의동삼사 · 승진

위에서 진남장군·육양후·시중에 오르고 문제의 수레에 배승하며, 사마의가 '촉에 그대 같은 사람이 몇이냐' 묻자 웃으며 '명공이 이렇게 중히 보시는 줄 몰랐다'고 답한다. 거기장군·의동삼사에 올랐다가 이듬해 죽는다.

정사 황권전: 위 문제가 황권을 진남장군에 앉히고 육양후에 봉하고 시중을 더해 수레에 배승하게 했다. 대장군 사마의가 깊이 기이하게 여겨 '촉중에 그대 같은 사람이 몇이냐' 묻자 황권이 웃으며 '명공께서 이처럼 중히 보아 주실 줄은 생각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황공형은 쾌사이니 앉으나 서나 족하를 탄술함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고 편지했다. 경초 3년(촉 연희 2년) 거기장군·의동삼사에 올랐고 이듬해 졸해 경후라 시호했다.

연의: 연의 85회

출전: 三國志 卷43 본 「大將軍司馬宣王深器之問權曰蜀中有卿輩幾人權笑而答曰不圖明公見顧之重也」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0이릉 패전 때 강북군을 이끌다 퇴로가 끊겨 위에 항복했으나 선주가 처자를 해치지 않았다(황권전).
무력57무용 기록 없음. 한중 공방에서 두호·박호를 깨뜨렸다(황권전).
지력78한중 쟁탈의 계책을 올려 하후연을 베고 한중을 얻은 일이 모두 황권의 본모(本謀)였다(황권전).
정치70치중종사·진북장군으로 실무를 맡았다(황권전).
매력76위 문제 앞에서 흔들림 없이 태연했고 사마의가 '쾌사(快士)'라 칭했다(황권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황권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