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華佗)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45년경(추정)사망 208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145년경(추정) — 생년 불명(145년경 추정, '나이 백 가까운데 얼굴은 장년'이라는 본문의 서술만 있음).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08년 — 사망 연도 불명 — 조조의 아들 창서(조충)가 병들어 죽은 208년을 하한으로 둠(화타전). 조조에게 고문받아 옥중에서 죽음.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6년허창조조의 시의(侍醫)로 곁에서 두통 치료기록
207년허창조조의 시의(侍醫)로 곁에서 두통 치료추정
208년허창(휴가를 청해 귀가 후 불복 → 허의 옥에서 고문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기타·재야(서주 일대 유학 후 의술 — 연대 불명)불명
197~205년기타·재야(순력 치료, 조조에 소환되기 전 — 연대 불명)불명
206년위조조의 시의(侍醫)로 곁에서 두통 치료기록
207년위조조의 시의(侍醫)로 곁에서 두통 치료추정
208년위(휴가를 청해 귀가 후 불복 → 허의 옥에서 고문사)기록

나온 사건·전투

197년 · (순력 치료, 조조에 소환되기 전 — 연대 불명) · 의술

약과 침으로 고치기 어려운 병은 마비산을 먹여 취한 듯 정신을 잃게 한 뒤 복부를 갈라 병소를 베어 내고, 장 속 병이면 장을 잘라 씻고 꿰매 고약을 바르는 외과술을 행한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조조 소환 전 활동기(197년경 추정)로 둠.

정사 화타전: 병이 몸 안에 맺혀 침과 약이 미치지 못해 갈라야 하면 마비산을 먹여 잠시 뒤 술 취해 죽은 듯 아무것도 모르게 한 뒤 파헤쳐 취했다. 병이 장 안에 있으면 장을 잘라 씻고 배를 꿰매 고약을 문질렀고 4~5일이면 낫고 아프지 않았으며 한 달 사이에 회복됐다. 화타전은 이 외에 광릉태수 진등의 위(胃) 속 벌레 치료 등 여러 일화를 싣는다. 이 일화의 연도는 모두 본문에 없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9 본 「若病結積在內針藥所不能及當須刳割者便飲其麻沸散須臾便如醉死無所知因破取」

206년 · 조조의 시의(侍醫)로 곁에서 두통 치료 · 치료

조조가 불러 곁에 두고, 두풍이 발작해 마음이 어지럽고 눈이 어지러울 때마다 격(鬲)에 침을 놓으니 손길 닿는 대로 낫는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추정.

정사 화타전: 조조가 소문을 듣고 화타를 불러 늘 곁에 두었다. 조조가 두풍에 시달려 발작할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고 눈이 어지러웠는데 화타가 격에 침을 놓자 손길을 따라 나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9 본 「太祖聞而召佗佗常在左右太祖苦頭風每發心亂目眩佗針鬲隨手而差」

208년 · (휴가를 청해 귀가 후 불복 → 허의 옥에서 고문사) · 사망

조조가 병이 깊어 전담을 명하자 화타가 '근치는 어렵고 계속 치료하면 세월을 늘릴 수 있다'고 하고 처의 병을 구실로 귀가해 돌아오지 않자, 조조가 크게 노해 허의 옥에 넘겨 고문 끝에 죽인다. 순욱이 '의술이 실로 정교하고 사람 목숨이 달렸다'며 구명했으나 조조는 '천하에 이런 쥐새끼가 없겠는가'라며 거절한다. 화타가 죽기 전 책 한 권을 옥리에게 주었으나 옥리가 법이 두려워 받지 않아 불살랐다. 조조는 창서가 죽자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고 탄식한다. 창서의 죽음은 208년.

정사 화타전: 조조가 위독해 화타에게 전담하게 하자 화타는 '이는 낫기 어렵고 늘 공들여 치료하면 세월을 늘릴 수 있다'고 했다. 화타가 집을 그리워해 처의 병을 핑계로 돌아가 기한을 여러 번 연장하고 돌아오지 않자, 조조가 거듭 서신으로 부르고 군현에 보내라 했다. 화타가 재주를 믿고 식사를 꺼려 길에 오르지 않아 조조가 크게 노해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아내가 정말 병들었다면 팥 40곡을 내려 기한을 늦추어 주고 거짓이면 체포해 보내라 했다. 허의 옥으로 넘겨 자백을 받았고 순욱이 '화타의 술이 실로 정교하고 인명이 걸렸으니 용서하십시오'라 청했으나 조조가 '걱정 마라, 천하에 이런 쥐새끼가 없겠느냐'고 하고 화타를 고문해 죽였다. 훗날 아끼는 아들 창서가 병이 위중해지자 조조가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 이 아이를 억지로 죽게 했다'고 탄식했다.

연의: 연의 78회 — 연의 75회의 '관우 팔 뼈 긁기' 일화는 정사 관우전에 화타가 나오지 않는다(연의 창작). 연의 78회는 조조가 화타를 죽이는 줄거리를 담는다.

출전: 三國志 卷29 본 「於是傳付許獄考驗首服荀彧請曰佗術實工人命所縣宜含宥之太祖曰不憂天下當無此鼠輩耶遂考竟佗」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 지휘 기록 없음.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
지력92마비산으로 복부를 열고 장을 씻어 꿰매는 외과술과 오금희(五禽之戲)를 고안했다(화타전).
정치58정치 기록 없음. 군수·시중·관리에게 효험 있는 치료를 행했으나 조조의 명을 거역해 옥에 갇혔다(화타전).
매력65순욱이 '화타의 의술이 정교하니 용서하라'고 구명했으나 조조가 거절했다. 조조가 훗날 창서의 죽음에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고 탄식했다(화타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화타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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