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8년 — 「時年四十二」(209년 졸)에서 역산 — 졸년 직접 명기 없음(강릉 구원 직후)
사망 209년 — 건안 14년(209) 전후 — 강릉 구원 후 귀환 중 병사. 전문은 「時年四十二」만 기록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7년 | 완 | 진위중랑장·비장군·양안도위 | 기록 |
| 200년 | 여남 | 여남태수 | 기록 |
| 201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2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3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4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5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6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7년 | 여남 | 여남태수 | 추정 |
| 209년 | 강릉 | 여남태수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6년 | 기타·재야 | (강하 출신 협객·낭릉에서 기병) | 불명 |
| 197년 | 위 | 진위중랑장·비장군·양안도위 | 기록 |
| 198~199년 | 위 | 진위중랑장·비장군·양안도위 | 불명 |
| 200년 | 위 | 여남태수 | 기록 |
| 201~207년 | 위 | 여남태수 | 추정 |
| 208년 | 위 | 여남태수 | 불명 |
| 209년 | 위 | 여남태수 | 기록 |
장수 정벌 때 유표가 장수를 돕자 조조가 불리하자 밤에 달려가 선등으로 장수군을 크게 깬다.
정사 이통전: 조조가 장수를 칠 때 유표가 장수를 돕는 군을 내 조조군이 불리해지자 이통이 병사를 이끌고 밤에 조조를 찾아가 다시 싸우게 했고 선등으로 장수군을 대파했다.
연의: 연의 18회
출전: 三國志 卷18 「通為先登大破繡軍」
관도 때 원소의 징남장군 임명과 유표의 초치를 모두 거절하고 인수를 조조에게 보낸다.
정사 이통전: 원소가 사자로 이통을 징남장군에 임명하고 유표도 몰래 초치했으나 이통은 모두 거절했고, 친척들이 원소에게 가자 하자 칼을 짚고 꾸짖으며 원소의 사자를 베고 인수를 조조에게 보냈다.
연의: 연의 18회
출전: 三國志 卷18 「吾以死不貳即斬紹使送印綬詣太祖」
주유·유비에게 포위된 조인을 구하러 강릉으로 가 녹각을 뽑고 진입하다 병을 얻어 죽는다.
정사 이통전: 유비와 주유가 강릉에서 조인을 포위하고 관우가 북쪽 길을 끊자 이통이 말에서 내려 녹각을 뽑아 포위 안으로 들어가 조인군을 맞아 용맹이 제장 중 으뜸이었으나 돌아오는 길에 병들어 42세로 죽었다.
연의: 연의 58회
출전: 三國志 卷18 「通率眾擊之下馬拔鹿角入圍」 / 三國志 卷18 「勇冠諸將」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6 | 강릉에서 조인 구원에 선두로 돌격해 장수 중 가장 용맹했다는 평을 받았다(이통전). |
| 무력 | 80 | 완에서 장수와 싸울 때 선등으로 장수군을 대파했고 강릉 구원에 돌격해 "용맹이 제장 가운데 으뜸"이라 불렸다(이통전). |
| 지력 | 65 | 주직 제거와 진합 토벌에서 결단과 기획으로 병력을 병합했다(이통전). |
| 정치 | 60 | 여남에서 도적을 토벌해 회수·여수 일대를 평정했다(이통전). |
| 매력 | 72 | "협"으로 강·여 사이에 이름났고 흉년에 재산을 털어 선비와 나눠 부하가 앞다퉈 쓰이길 원했다(이통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이통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