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31년 — 태화 5년(231) 사망, 시호 경후(화흠전: 太和五年,歆薨).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9년 | 낙양 | 상서랑(하진의 징소) | 기록 |
| 190년 | 완 | (남양에서 원술에게 권유하나 불용) | 기록 |
| 191년 | 완 | (남양에서 원술에게 권유하나 불용) | 기록 |
| 192년 | 담 | (마일제의 연으로 서주에 이름) | 추정 |
| 193년 | 담 | (마일제의 연으로 서주에 이름) | 추정 |
| 194년 | 예장 | 예장태수 | 추정 |
| 195년 | 예장 | 예장태수 | 추정 |
| 196년 | 예장 | 예장태수(손책에게 귀의) | 기록 |
| 197년 | 예장 | 예장태수(손책에게 귀의) | 기록 |
| 198년 | 예장 | 예장태수(손책에게 귀의) | 기록 |
| 199년 | 예장 | 예장태수(손책에게 귀의) | 기록 |
| 200년 | 예장 · 다른 후보: 허창 | (조조의 요청으로 허로 떠남) | 기록 |
| 216년 | 허창 | 어사대부 | 기록 |
| 217년 | 허창 | 어사대부 | 기록 |
| 218년 | 허창 | 어사대부 | 기록 |
| 219년 | 허창 | 어사대부 | 기록 |
| 220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1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2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3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4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5년 | 낙양 | 상국 → 사도 | 기록 |
| 226년 | 낙양 | 태위 | 기록 |
| 227년 | 낙양 | 태위 | 기록 |
| 228년 | 낙양 | 태위 | 기록 |
| 229년 | 낙양 | 태위 | 기록 |
| 230년 | 낙양 | 태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8년 | 후한 조정 | (평원 고당 출신, 효렴 낭중·병으로 사직, 연대 불명) | 불명 |
| 189년 | 후한 조정 | 상서랑(하진의 징소) | 기록 |
| 190~191년 | 기타·재야 | (남양에서 원술에게 권유하나 불용) | 기록 |
| 192~193년 | 후한 조정 | (마일제의 연으로 서주에 이름) | 추정 |
| 194~195년 | 후한 조정 | 예장태수 | 추정 |
| 196~199년 | 기타·재야 | 예장태수(손책에게 귀의) | 기록 |
| 200년 | 위 | (조조의 요청으로 허로 떠남) | 기록 |
| 201~215년 | 위 | 의랑·참사공군사 → 상서 → 상서령 | 불명 |
| 216~219년 | 위 | 어사대부 | 기록 |
| 220~225년 | 위 | 상국 → 사도 | 기록 |
| 226~230년 | 위 | 태위 | 기록 |
| 231년 | 위 | 태위(사망) | 불명 |
하진이 보정하자 부름을 받아 낙양에서 상서랑이 된다.
정사 화흠전: 영제가 죽고 하진이 보정하며 하남 정태, 영천 순유와 화흠 등을 불렀다. 화흠이 이르러 상서랑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靈帝崩,何進輔政,徵河南鄭泰、潁川荀攸及歆等。歆到,爲尚書郎」
원술에게 동탁을 치도록 권했으나 쓰이지 않는다.
정사 화흠전: 동탁이 장안으로 옮기자 화흠은 남양에서 원술에게 군을 일으켜 동탁을 치자고 권했으나 원술이 쓰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歆說術使進軍討卓,術不能用」
예장태수로서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자 두건을 쓰고 맞이한다. 손책이 상객의 예로 대한다.
정사 화흠전: 손책이 강동을 공략하자 화흠은 손책이 용병에 능함을 알고 복건 차림으로 맞이했다. 손책은 화흠을 상빈의 예로 대접했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손책의 예장 진군(건안 4년)보다 앞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孫策略地江東,歆知策善用兵,乃幅巾奉迎」
관도에서 조조가 천자에게 표를 올려 화흠을 부르자, 손권이 보내지 않으려 하는 것을 설득해 허로 떠난다.
정사 화흠전: 조조가 관도에서 천자에게 표를 올려 화흠을 불렀다. 손권이 보내지 않으려 하자 화흠이 '저를 억류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을 기르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손권이 기뻐해 보냈다. 연도는 건안 5년(200)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太祖在官渡,表天子徵歆」 / 三國志 卷13 「孫權欲不遣」
문제가 즉위하자 상국에서 사도가 된다.
정사 화흠전: 문제가 왕위에 올라 상국에 임명했고 즉위하자 사도로 고쳤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及踐阼,改爲司徒」
태화 5년 죽는다. 시호는 경후.
정사 화흠전: 태화 5년 화흠이 죽었고 시호는 경후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3 「歆薨,謚曰敬侯」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정사에 직접 군을 거느린 서술이 적다. 조조의 손권 정벌 때 군사(軍師)로 따랐다(화흠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이 없다. |
| 지력 | 74 | 왕분이 영제 폐립을 모의할 때 '반드시 실패해 화가 일족에 미친다'며 말려 진도 홍을 만류했다(화흠전). |
| 정치 | 83 | 예장태수로 맑고 번거롭지 않게 다스렸다. 효렴에 경전 시험을 면하자는 제안에 반대해 받아들여졌다(화흠전). |
| 매력 | 78 | 청빈해 녹봉을 친척·옛 친구에게 나눠 주어 집에 비축한 곡식이 없었다. 하사된 노비를 시집보냈다(화흠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화흠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