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蔣濟)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49년기록 연도 6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초국 평아 출신)

사망 249년 — 정시 10년(249) — 고평릉 정변 직후 졸. 전문은 「是歲薨」(봉작 사양 직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8년합비별가→단양태수기록
209년업별가→단양태수기록
219년허창승상주부서조속기록
222년유수구산기상시→상서기록
228년환성동중랑장→중호군기록
249년낙양태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07년기타·재야군계리·주별가(초국 평아 출신)불명
208~209년위별가→단양태수기록
210년위별가→단양태수불명
211~218년위승상주부서조속불명
219년위승상주부서조속기록
220~221년위상국장사→동중랑장불명
222년위산기상시→상서기록
223~226년위산기상시→상서불명
227년위동중랑장→중호군불명
228년위동중랑장→중호군기록
229년위동중랑장→중호군불명
230~238년위호군장군·산기상시불명
239~248년위영군장군→태위불명
249년위태위기록

나온 사건·전투

208년 · 별가→단양태수 · 구원

손권이 합비를 포위하자 거짓 구원서로 이를 믿게 해 포위를 풀게 한다.

정사 장제전: 건안 13년 손권이 합비를 포위했을 때 장제는 자사에게 말해 장희의 서신을 거짓으로 꾸며 보병·기병 4만이 이미 우루에 도착했다고 쓰고 사자를 보내 성안에 전하게 했으며, 손권이 믿고 포위를 풀고 달아나 합비가 온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步騎四萬已到雩婁」 / 三國志 卷14 「權信之遽燒圍走城用得全」

209년 · 별가→단양태수

조조가 회남 백성을 옮기려 하자 "백성이 땅을 그리워해 불안해한다"고 반대하나 따르지 않아 10만 명이 오로 달아난다.

정사 장제전: 조조가 회남 백성을 옮기려 하자 장제는 "백성이 고향을 떠나길 원치 않아 불안해할 것"이라 했으나 조조가 따르지 않아 강·회 사이 10여만이 모두 놀라 오로 달아났다.

연의: 연의 86회

출전: 三國志 卷14 「百姓懷土實不樂徙懼必不安」 / 三國志 卷14 「江淮間十餘萬眾皆驚走吳」

219년 · 승상주부서조속 · 책략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자 사마의와 함께 천도 대신 손권을 부추겨 관우 뒤를 치게 하자고 건의한다.

정사 장제전: 관우가 번·양양을 포위해 조조가 천도를 고려하자 사마의와 장제가 "우금 등의 수몰은 전공의 실패가 아니며 유비·손권은 겉만 친하다. 손권에게 강남 봉지를 주겠다고 부추겨 관우 뒤를 밟게 하면 번성 포위가 풀릴 것"이라 했고, 조조가 따라 손권이 공안·강릉을 습격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4 「劉備孫權外親內疏關羽得志權必不原也」 / 三國志 卷14 「權聞之即引兵西襲公安江陵」

222년 · 산기상시→상서 · 경고

조인이 유수 모래톱 공격을 하려 하자 "안으로 들어가는 지옥"이라 말렸으나 듣지 않아 패한다.

정사 장제전: 황초 3년 조인이 유수 모래톱에 병을 들이려 하자 장제는 "적이 서안을 차지하고 배를 상류에 늘어놓았는데 모래톱에 들어가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라 했으나 조인은 따르지 않아 과연 패했다.

연의: 연의 75회

출전: 三國志 卷14 「賊據西岸列船上流而兵入洲中是為自內地獄」 / 三國志 卷14 「仁不從果敗」

228년 · 동중랑장→중호군

조휴가 환으로 향하자 위험을 경고하고, 패한 뒤 구원군으로 군이 전멸을 면하게 한다.

정사 장제전: 조휴가 환으로 향하자 장제는 "깊이 적지에 들어가 손권 정병과 맞서는데 주연 등이 상류에서 조휴 뒤를 노린다"며 위험을 상주했고, 조휴가 패해 병장기를 버리고 돌아올 때 오군이 협석을 막으려 했으나 구원군이 도착해 관군이 전멸을 면했다.

연의: 연의 86회

출전: 三國志 卷14 「深入虜地與權精兵對」 / 三國志 卷14 「官軍得不沒」

249년 · 태위 · 사양

사마의를 따라 낙수 부교에 주둔해 조상 일파를 진압하고 태위로 공훈 봉작을 사양한다.

정사 장제전: 사마의를 따라 낙수 부교에 주둔해 조상 등을 주살하는 데 참여하고 도향후로 올랐으나 "전략을 미리 알지 못했고 군을 이끌지도 않았다"며 봉상을 굳이 사양했다. 이해에 졸했고 시호는 경후.

연의: 연의 107회

출전: 三國志 卷14 「以隨太傅司馬宣王屯洛水浮橋誅曹爽等進封都鄉侯」 / 三國志 卷14 「固辭不許是歲薨」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6조인 군의 유수 진격을 말리고 조휴의 환 방면 출병에 위험을 경고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아 패했다(장제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81합비 포위 때 거짓 구원서로 손권을 물러나게 했고, 번성 전역에서 손권과 연합해 관우의 뒤를 치자고 했다(장제전).
정치70대신 권한과 중서 권한의 과대를 경계했고 경초 연간 백성을 쉬게 하자고 간했다(장제전).
매력61"소관의 말에서 처음 듣는 말이다"라고 명제가 칭찬한 직언이 있다(장제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제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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