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2년경(추정) — 「年三十六薨」(졸년 미명기)에서 역산할 수 없음 — 생년 불명
사망 218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합비 전투(215) 이후 36세로 졸. 218년은 통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0년 | 관도 | 비장군(안민 주둔) | 기록 |
| 201년 | 관도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2년 | 관도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3년 | 여양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4년 | 관도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5년 | 관도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6년 | 호관 | 편장군→포로장군 | 기록 |
| 210년 | 업 | 편장군→포로장군 | 추정 |
| 211년 | 업 | 파로장군 | 추정 |
| 212년 | 업 | 파로장군 | 추정 |
| 213년 | 업 | 파로장군 | 추정 |
| 214년 | 업 | 파로장군 | 추정 |
| 215년 | 합비 | 파로장군(합비 주둔) | 기록 |
| 216년 | 합비 | 파로장군(합비 주둔) | 추정 |
| 217년 | 합비 | 파로장군(합비 주둔)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년 | 위 | 비장군(안민 주둔) | 기록 |
| 201~205년 | 위 | 비장군(안민 주둔) | 추정 |
| 206년 | 위 | 편장군→포로장군 | 기록 |
| 207~209년 | 위 | 편장군→포로장군 | 불명 |
| 210년 | 위 | 편장군→포로장군 | 추정 |
| 211~214년 | 위 | 파로장군 | 추정 |
| 215년 | 위 | 파로장군(합비 주둔) | 기록 |
| 216~217년 | 위 | 파로장군(합비 주둔) | 추정 |
| 218년 | 위 | 파로장군 | 불명 |
관도에서 종족·부곡과 함께 곡식과 비단을 군에 바친다.
정사 이전전: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맞설 때 이전이 종족과 부곡을 이끌고 곡식과 비단을 군에 바쳤고, 원소가 깨지자 비장군에 임명되어 안민에 주둔했다.
연의: 연의 30회
관련: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8 「典率宗族及部曲輸谷帛供軍」
여양에서 정욱과 군량을 배로 나르다 고번의 수로 차단을 독단으로 쳐 깨뜨린다.
정사 이전전: 조조가 여양에서 원담·원상을 칠 때 이전이 정욱과 군량을 배로 운반했는데, 원상이 보낸 고번이 강가에서 수로를 끊자 "군은 안에서 제어하지 않는다. 나라에 이로우면 전단해도 된다"며 북쪽으로 건너 고번을 깨뜨리고 물길을 열었다.
연의: 연의 31회
출전: 三國志 卷18 「苟利國家專之可也宜亟擊之」 / 三國志 卷18 「遂北渡河攻蕃破之水道得通」
악진과 호관에서 고간을 포위하고 장광에서 관승을 격파한다.
정사 이전전: 업이 평정되자 악진과 호관에서 고간을, 장광에서 관승을 깨뜨리고 포로장군이 되어 도정후에 봉해졌다.
연의: 연의 33회
관련: 호관 전투
출전: 三國志 卷18 「與樂進圍高幹於壺關」
종족·부곡 1만 3천여 명을 업으로 옮겨 살게 한다.
정사 이전전: 이전이 "정벌이 이어지니 교외 안을 채워 사방을 제어해야 한다"며 종족과 부곡 1만 3천여 명을 업으로 이주시켰고 조조는 칭찬하며 파로장군으로 올렸다.
연의: 연의 32회
출전: 三國志 卷18 「遂徙部曲宗族萬三千餘口居鄴」
합비 전투에서 사사로운 불화를 접고 장료와 함께 출전해 손권을 물리친다.
정사 이전전: 장료·악진·이전은 서로 사이가 나빴으나 장료가 출전을 걱정하자 이전이 "나라의 큰일이니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의를 잊겠느냐"며 장료와 함께 손권을 쳐 쫓았다.
연의: 연의 67회
관련: 합비 소요진 전투
출전: 三國志 卷18 「吾可以私憾而忘公義乎乃率眾與遼破走權」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합비에서 장료·악진과 함께 7천으로 주둔했고 사사로운 불화를 접고 장료와 손권을 격파했다(이전전). |
| 무력 | 76 | 무용보다는 학문을 즐겼으나 합비·여양에서 선제 공격으로 승리했다(이전전). |
| 지력 | 75 | 고번이 수군에 의지해 해이한 것을 보고 "군은 안에서 제어하지 않는다"며 독단으로 쳐 물길을 열었다(이전전). |
| 정치 | 64 | 종족·부곡 1만 3천여 명을 업으로 옮겨 조조의 칭찬을 받았다(이전전). |
| 매력 | 76 | 학문과 선비 존중으로 군중에서 장자라 불렸다(이전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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