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劉馥)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60년경(추정)사망 208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160년경(추정) — 생년 불명(16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08년 — 건안 13년(208) 사망(유복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0년합비양주자사기록
201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2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3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4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5년합비양주자사기록
206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7년합비양주자사추정
208년합비양주자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기타·재야(패국 상 출신, 양주로 피난)불명
197~199년위사도연불명
200년위양주자사기록
201~204년위양주자사추정
205년위양주자사기록
206~207년위양주자사추정
208년위양주자사기록

나온 사건·전투

197년 · 사도연

원술의 장수 척기·진익을 설득해 무리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하게 한다.

정사 유복전: 피난해 양주에 있던 유복이 건안 초에 원술의 장수 척기·진익을 설득해 무리를 이끌고 함께 조조에게 가게 했고 조조가 기뻐해 사도연으로 불렀다. 건안 초라는 연도만 있어 197년경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본 「建安初說袁術將戚寄秦翊使率衆與俱詣太祖」

200년 · 양주자사

조조가 원소와 맞서던 때 양주자사로 임명되어 단기로 빈 합비성에 주치를 세운다.

정사 유복전: 여강태수 이술이 양주자사 엄상을 죽이고 매건·뇌서·진란이 수만을 모아 강회 사이를 어지럽히자 조조가 원소와 대치하면서 유복에게 동남 일을 맡겨 양주자사로 올렸다. 유복은 단기로 빈 합비성에 가 주치를 세우고 회유했다. 원소와 맞선 때(200)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본 「馥旣受命單馬造合肥空城建立州治」

205년 · 양주자사

학교를 세우고 둔전을 넓히며 작피·여피 등 제방을 일으켜 논에 물을 대고 성에 목석과 어고를 쌓아 전쟁에 대비한다.

정사 유복전: 몇 해 안에 은덕이 크게 행해져 유민이 강산을 넘어 돌아온 이가 만으로 헤아렸다. 학교를 세우고 둔전을 넓히며 작피·여피·칠문·오당 등 제방을 일으켜 논에 물을 댔고, 성루를 높이고 목석·초구·어고를 쌓아 전수 준비로 삼았다. 「數年」이라 205년경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본 「聚諸生立學校廣屯田興治芍陂及茹陂七門吳塘諸堨以溉稻田」

208년 · 양주자사 · 수성 성공

유복이 죽은 해 손권이 10만으로 합비를 100여 일 포위했으나 유복이 쌓아 둔 초구와 어고로 버텨 적이 물러난다.

정사 유복전: 건안 13년 유복이 죽었다. 손권이 10만으로 합비성을 100여 일 에워싸 비로 성이 무너지려 했으나 유복이 쌓은 초구로 덮고 밤에 어고 등불로 성 밖을 살펴 대비해 적이 깨져 달아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본 「孫權率十萬衆攻圍合肥城百餘日」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5양주자사로 합비성에 주성을 세우고 성곽·초소·어고를 쌓아 전쟁에 대비했다(유복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유복전).
지력71원술의 장수 척기·진익을 설득해 조조에게 귀순시켰다(유복전).
정치86작피 등 제방을 일으켜 논에 물을 대고 학교를 세우고 둔전을 넓혔다(유복전).
매력70유민이 만 단위로 돌아오고 사민이 죽은 뒤에도 오래 그리워했다(유복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복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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