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何夔)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60년경(추정)사망 226년기록 연도 0해

생몰

출생 160년경(추정) — 생년 불명(16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26년 — 문제 즉위(220) 후 병으로 여러 번 사임을 청한 끝에 사망. 연도는 본문에 없고 226년은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시호 정후

연도별 위치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기타·재야(진군 양하 출신, 회남으로 피난·원술에게 억류)불명
197~205년위사공연속→성보령불명
206~208년위장광태수불명
209~212년위참승상군사→낙안태수→승상동조연불명
213~219년위상서복야→태자소부불명
220~226년위태복·성양정후불명

나온 사건·전투

197년 · 사공연속→성보령

원술에게 억류됐다가 몰래 길을 따라 탈출해 이듬해 고향에 돌아가 조조의 사공연속이 된다.

정사 하기전: 건안 2년 하기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며 원술이 반드시 급히 추격하리라 보고 샛길로 가 면했고 이듬해 본군에 이르렀다. 얼마 뒤 조조가 사공연속으로 불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夔將還鄉里度术必急追乃間行得免明年到本郡」

206년 · 장광태수 · 평정

장광태수로서 3천여 가의 관승이 일으킨 도적을 병력 없이 군승 황진을 보내 설득해 항복시킨다.

정사 하기전: 장광에서 관승이 3천여 가를 이끌고 도적질하자 의논자들이 병력으로 치려 했다. 하기는 관승 등이 난에 익숙할 뿐이라며 은덕으로 타일러 후회하게 하자 했고 군승 황진을 보내 성패를 설명하자 관승 등이 모두 항복을 청했다. 장광태수 부임 연도는 본문에 없고 206년경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乃遣郡丞黄珍往爲陳成敗承等皆请服」

210년 · 참승상군사→낙안태수→승상동조연

해적 곽조가 낙안·제남을 어지럽히자 낙안태수가 되어 몇 달 만에 성을 모두 평정한다.

정사 하기전: 해적 곽조가 낙안·제남 경계를 노략질해 주군이 괴로워하자 조조가 장광에서 위신이 있던 하기를 낙안태수로 삼았다. 부임 몇 달 만에 여러 성이 모두 평정되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210년경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拜樂安太守到官數月諸城悉平」

213년 · 상서복야→태자소부

위국이 세워지자 상서복야가 된다.

정사 하기전: 위국이 세워지자 상서복야에 임명되었다. 정의 형제가 총애받아 하기와 불화했으나 하기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정의는 뒤에 흉위로 패했다. 위국 건립은 213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魏國既建拜尚書僕射」

226년 · 태복·성양정후

문제가 병든 하기에게 편히 쉬라는 조서를 내리고 하기는 죽어 정후라 시호한다.

정사 하기전: 문제가 즉위하자 성양정후에 봉해졌고 병으로 여러 번 사임을 청했다. 문제가 "예현은 제왕의 일"이라며 편히 쉬라는 조서를 내렸고 죽자 정후라 시호했다. 사망 연도는 본문에 없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君其即安以順朕意薨諡曰靖侯」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장광에서 군사를 쓰지 않고 관승 등을 설득해 항복시켰고 장료와 함께 전종을 평정했다(하기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하기전).
지력71원술의 멸망과 해적 평정 등에서 형세를 정확히 짚었다(하기전).
정치78새 과세를 먼 땅에 맞게 3년 유예하자고 상소했고 동조연으로 향려 검증 등용을 주청했다(하기전).
매력68태자 문제가 만나자고 해도 국법을 들어 가지 않을 만큼 법도를 따랐다(하기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하기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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