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26년 — 황초 7년(226) 문제 재위 말, 처형. 「後二旬 文帝亦崩」으로 역산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16년 | 기타·재야 | (태산 평양 출신, 출사 전) | 불명 |
| 217~219년 | 위 | 승상연→태자중서자·황문시랑→위군 서부도위 | 불명 |
| 220~221년 | 위 | 부마도위·시중→우중랑장 | 불명 |
| 222~224년 | 위 | 우중랑장·궁정(어사중승) | 불명 |
| 225~226년 | 위 | 치서집법 | 불명 |
태자가 세워지자 중서자가 되고 이어 황문시랑이 된다.
정사 포훈전: 건안 22년(217) 조비가 태자로 서자 포훈이 중서자가 되었고, 황문시랑을 거쳐 위군 서부도위로 나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二十二年立太子以勛爲中庶子」
문제가 상중에 사냥을 나가자 간하다가 우중랑장으로 쫓겨난다.
정사 포훈전: 문제가 사냥을 나서자 포훈이 수레를 멈추고 상소해 간했고, 또 시중 유엽이 아첨한다고 탄핵해 문제가 노해 포훈을 우중랑장으로 내보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즉위 직후(220~221)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帝怒作色罷還即出勛爲右中郎將」
문제가 오를 치려 하자 면전에서 간하다가 치서집법으로 좌천된다.
정사 포훈전: 황초 6년(225) 가을 문제가 오를 정벌하려 하자 포훈이 오·촉이 순치 관계라 쳐도 이기기 어렵다고 간했고, 문제는 더욱 노해 치서집법으로 좌천시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帝益忿之左遷勛爲治書執法」
진류 군영에서 군영 영사 유요 사건으로 탄핵당해 문제가 대신들의 구명을 물리치고 처형한다.
정사 포훈전: 영사 유요의 밀고로 포훈이 수사 처리를 감춰 주었다는 죄에 걸렸다. 정위는 5년형, 3관은 벌금을 의논했으나 문제가 크게 노했고, 종요·화흠 등이 포신의 공을 들어 구명했으나 불허하고 포훈을 죽였다. 20일 뒤 문제도 죽었다. 처형 연도는 문제 사망 20일 전으로 226년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帝不許遂誅勛」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사 지휘 기록이 없다(포훈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이 없다(포훈전). |
| 지력 | 61 | 오 정벌의 어려움을 산수와 오·촉의 순치 관계로 설명했다(포훈전). |
| 정치 | 70 | 태자 곽부인의 동생이 관포를 훔친 죄를 사정 없이 상주했고 문제의 사냥을 막으려 간했다(포훈전). |
| 매력 | 59 | 처형 후 문제의 죽음에 모두 한탄했고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포훈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훈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