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10년 — 건안 15년(210) 졸 — 문제 즉위 후 위후로 추시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5년 | 남피 | 호표기 독 | 기록 |
| 207년 | 유성 | 고릉정후 | 기록 |
| 208년 | 장판 | 고릉정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6년 | 기타·재야 | (미출사·연대 불명) | 불명 |
| 197~204년 | 위 | 의랑·참사공군사(호표기 독) | 불명 |
| 205년 | 위 | 호표기 독 | 기록 |
| 206년 | 위 | 호표기 독 | 불명 |
| 207~208년 | 위 | 고릉정후 | 기록 |
| 209~210년 | 위 | 고릉정후 | 불명 |
남피를 포위한 조조에게 "깊이 쳐들어와 물러나면 위엄이 깎인다"며 급공을 건의해 원담을 깬다.
정사 조순전: 조순이 호표기를 지휘해 남피를 포위했고 원담이 출전해 사졸이 많이 죽자 조조가 늦추려 했으나 "彼勝而骄我敗而懼"의 논리로 급공을 건의했고, 조순 휘하 기병이 원담의 목을 베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남피 전투
출전: 三國志 卷09 「彼勝而骄我敗而懼以懼敵骄必可克也」 / 三國志 卷09 「純麾下騎斬譚首」
북정 3군에서 선우 답돈을 사로잡는 데 참전한다.
정사 조순전: 3군 북정 때 조순의 기병이 선우 답돈을 사로잡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北征三郡純部騎获单於蹹顿」
형주를 평정하고 유비를 장판에서 추격해 두 딸의 치중을 얻는다.
정사 조순전: 형주 정벌에서 장판에서 유비를 추격해 두 딸과 치중을 얻고 흩어진 병사를 거두었으며, 강릉을 항복시킨 뒤 초로 돌아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장판 전투
출전: 三國志 卷09 「追劉備於長坂获其二女輜重收其散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호표기를 지휘해 유비의 두 딸과 치중을 장판에서 획득했다(조순전). |
| 무력 | 72 | 호표기 병사 대부분을 선발해 이끌고 남피를 포위해 원담의 목을 베는 데 참전했다(조순전). |
| 지력 | 65 | "깊이 쳐들어온 군은 오래 버틸 수 없다"며 남피 공격을 서두르도록 건의했다(조순전). |
| 정치 | 50 | 재물이 많고 부친 사업을 이었다(배송지 주 ― 英雄記). |
| 매력 | 59 | 동생인 조인과 달리 호표기를 통솔해 병사들을 어루만졌다(배송지 주 ― 魏書).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순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