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32년 — 태화 6년(232) 졸 — 시호 공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0년 | 형양 | (조조 종군) | 기록 |
| 195년 | 복양 | 양무중랑장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9년 | 기타·재야 | (초 출신·기춘장 등·연대 불명) | 불명 |
| 190년 | 위 | (조조 종군) | 기록 |
| 191년 | 위 | (조조 종군) | 불명 |
| 192~193년 | 위 | 응양교위→양무중랑장 | 불명 |
| 194년 | 위 | 양무중랑장 | 불명 |
| 195년 | 위 | 양무중랑장 | 추정 |
| 196년 | 위 | 양무중랑장 | 불명 |
| 197~205년 | 위 | 간의대부 | 불명 |
| 206~208년 | 위 | 여봉장군·국명정후 | 불명 |
| 209~219년 | 위 | 도호장군 | 불명 |
| 220~226년 | 위 | 위장군→표기장군·야왕후 | 불명 |
| 227~232년 | 위 | 표기장군 | 불명 |
형양에서 서영에게 패한 조조에게 말을 내주고 "천하에 홍이 없어도 되나 군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정사 조홍전: 조조가 형양에서 동탁의 장수 서영에게 패해 말을 잃고 쫓길 때 조홍이 말에서 내려 조조에게 주며 "天下可無洪不可無君"이라 했고, 변수에서 배를 구해 함께 건넜다.
연의: 연의 6회
출전: 三國志 卷09 「天下可無洪不可無君」 / 三國志 卷09 「洪循水得船與太祖俱濟」
양주자사 진온의 도움으로 여강·단양에서 군사를 모아 조조와 합류한다.
정사 조홍전: 조홍이 가병 천여 명을 이끌고 진온에게 가 여강 상갑 2천 명을 모집하고 단양에서 다시 수천 명을 얻어 용항에서 조조와 합류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得廬江上甲二千人東到丹楊復得數千人」
장막·여포의 연주 반란 때 동평·범에 먼저 들어가 군량을 모아 조조군을 잇는다.
정사 조홍전: 대기근에 조홍이 군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동평·범을 점거하고 곡식을 모아 군을 이었으며, 복양에서 여포를 격파한 뒤 동아에 근거해 제음·산양 등 10여 현을 함락했다.
연의: 연의 11회
출전: 三國志 卷09 「洪將兵在前先据東平範聚糧穀以繼軍」
가신이 법을 어겨 하옥되자 사형이 될 뻔하나 변태후의 청으로 면직·삭봉에 그친다.
정사 조홍전: 문제가 어릴 때 재물을 빌리려 했으나 조홍이 거절하자 원한을 품었고, 조홍의 식객이 법을 어기자 조홍을 하옥해 사형에 처하려 했다. 변태후가 곽후에게 "홍이 죽으면 내일 황제를 폐하라 하겠다"고 울며 청해 면관·삭토에 그쳤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令曹洪今日死吾明日敕帝废后矣」 / 三國志 卷09 「乃得免官削爵土」
명제 때 후장군·표기장군으로 복직했다가 태화 6년에 죽는다.
정사 조홍전: 명제가 즉위하자 후장군에 임명하고 낙성후로 옮겨 봉하고 특진을 주었으며 다시 표기장군이 되었다. 태화 6년에 졸했고 시호는 공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諡曰恭侯」
정사 무제기·원소전: 200년 2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원소는 정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도를 치려 했고, 조조는 관도에 군을 모으고 병력이 1만에 못 미쳐 사상자가 열에 두셋이었다. 원소는 높은 망루와 토산에서 영채에 화살을 쏘았고 조조는 발석거(벽력거)로 이를 부수었다. 원소가 땅굴을 파자 조조는 안에 긴 참호를 팠다. 군량이 모자라던 때 허유가 항복해 순우경의 오소 군량 수송을 알리자 조조는 보기 5천으로 밤에 오소를 급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장합·고람이 항복하자 원소군이 무너졌다.
연의: 연의 30~31회
정사 무제기: 204년 4월 조조가 조홍에게 업의 포위를 맡기고 토산·땅굴을 파고 참호를 두르며 장수(漳水)를 터 성을 물에 잠가 성중 굶어 죽은 자가 절반을 넘었다. 7월 원상이 구원하러 돌아와 서산을 따라 오다 조조에게 막혀 달아났다. 8월 심배의 조카 심영이 밤에 성 동문을 열어 조조군이 들어와 심배를 사로잡았다. 연의 32회는 허유의 수공 계책과 지하도로 그린다.
연의: 연의 32회
정사 무제기: 업이 함락된 뒤 원담이 감릉·안평·발해·하간을 빼앗자, 조조가 절교 편지를 보내고 진군했다. 원담이 평원을 버리고 남피로 달아났다. 12월 조조가 평원에 들어가 주변 현을 평정했고, 205년 정월 남피를 쳐서 원담을 베고 그 처자를 죽였다. 연의 33회는 한겨울 하천이 얼어 군량선이 움직이지 못하자 백성에게 얼음을 깨게 하는 이야기를 더한다.
연의: 연의 33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조조 초기부터 종군해 도호장군에 올랐고 문제 때 위장군·표기장군이 되었다(조홍전). |
| 무력 | 82 | 형양에서 말을 내어 조조를 살리고 "천하에 홍이 없어도 되지만 군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라 했다(조홍전). |
| 지력 | 63 | 유표의 별장을 무양·음엽·도양·박망에서 격파했다(조홍전). |
| 정치 | 54 | 진온에게 가서 노강 상갑 2천 명과 단양 수천 명을 모아 조조와 합류했다(조홍전). |
| 매력 | 59 | 재물이 많았으나 인색했고 문제의 원한을 사 사형 선고까지 갔다가 변씨의 청으로 면직되었다(조홍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홍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