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46년 — 265년 선양 때 '20세'(진류왕 전)에서 역산
사망 265년 — 사망 연도 불명 — 본문(진류왕전)은 선양과 업(鄴) 거처까지만 적어 마지막 기록 연도 265년을 기준으로 둠. 계산용 가정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60년 | 낙양 | 황제(위 원제) | 기록 |
| 261년 | 낙양 | 황제 | 추정 |
| 262년 | 낙양 | 황제 | 추정 |
| 263년 | 낙양 | 황제 — 촉 정벌 조서 | 기록 |
| 264년 | 낙양 | 황제 — 유선을 안락공에 봉함 | 기록 |
| 265년 | 낙양 | 황제 → 선양 후 금용성·업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46~257년 | 위 | (연왕 조우의 아들) | 불명 |
| 258~259년 | 위 | 상도향공(안차현) | 불명 |
| 260년 | 위 | 황제(위 원제) | 기록 |
| 261~262년 | 위 | 황제 | 추정 |
| 263년 | 위 | 황제 — 촉 정벌 조서 | 기록 |
| 264년 | 위 | 황제 — 유선을 안락공에 봉함 | 기록 |
| 265년 | 위 | 황제 → 선양 후 금용성·업 | 기록 |
고귀향공이 죽은 뒤 공경의 의논으로 상도향공 조환이 낙양에 들어가 태황태후를 뵙고 그날 태극전에서 황제로 즉위한다.
정사 진류왕전: 감로 3년 안차현 상도향공에 봉해졌다. 고귀향공이 죽자 공경이 의논해 공을 맞아 세우기로 했다. 6월 갑인 낙양에 들어가 황태후를 뵙고 그날 태극전 앞에서 황제 자리에 올라 대사하고 연호를 바꾸며 민작과 곡식·비단을 차등 있게 내렸다.
연의: 연의 114회
출전: 三國志 卷04 본 「高貴鄉公卒公卿議迎立公六月甲寅入于洛陽見皇太后是日即皇帝位於太極前殿」
등애·종회가 촉을 정벌해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하고 파촉이 모두 평정된다.
정사 진류왕전: 경원 4년 등애·종회가 군을 이끌고 촉을 쳐 가는 곳마다 이겼다. 이 달 촉주 유선이 등애에게 와 항복해 파촉이 모두 평정되었다.
연의: 연의 118회
출전: 三國志 卷04 본 「蜀主劉禪詣艾降巴蜀皆平」
유선을 안락공에 봉하고 진공 사마소의 작위를 왕으로 올려 10군을 봉하는 것을 윤허한다. 함희 원년.
정사 진류왕전: 함희 원년 3월 진공의 작위를 왕으로 올리고 10군을 봉해 앞의 것과 합해 20군이 되게 했다. 정해일에 유선을 안락공에 봉했다.
연의: 연의 118회
출전: 三國志 卷04 본 「丁亥封劉禪為安樂公」
천록이 끝나고 역수가 진에 있다 하여 남교에 단을 쌓고 황제 새수와 책을 진 사왕(사마염)에게 선양한다. 금용성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업에서 20세로 지낸다.
정사 진류왕전: 12월 임술 '천록이 영영 끝나고 역수가 진에 있다'며 군공·경사에게 남교에 단을 갖추게 하고 사자로 황제 새수와 책을 받들어 진 사왕에게 선위하게 했다. 갑자 사자가 책을 받들었다. 마침내 금용성으로 옮겼다가 업에서 지냈으며 당시 20세였다.
연의: 연의 120회
출전: 三國志 卷04 본 「天祿永終歷數在晉詔羣公卿士具儀設壇于南郊使使者奉皇帝璽綬冊禪位于晉嗣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군 지휘 기록 없음. 즉위 뒤 군사는 상국 사마소가 주도했다(진류왕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50 | 지략 기록 없음. 촉 정벌 조서는 사마소의 뜻에 따라 내렸다(진류왕전). |
| 정치 | 50 | 정사는 상국 사마소가 총괄했고 황제는 의례·조서 발부에 그쳤다(진류왕전). |
| 매력 | 50 | 평은 '몸을 낮추어 남면하고 재상이 정사를 통괄했으며 선양하여 큰 나라에 봉해졌다'고 한다(진류왕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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