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41년 — 감로 5년(260) 졸 향년 20세로 역산
사망 260년 — 감로 5년 5월 군사를 이끌고 사마소를 치러 나갔다가 성제(成濟)에게 살해됨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54년 | 낙양 | 황제 | 기록 |
| 256년 | 낙양 | 황제 | 기록 |
| 257년 | 낙양 | 황제 | 기록 |
| 260년 | 낙양 | 황제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41~243년 | 기타·재야 | (동해정왕 조림의 아들, 고귀향공) | 불명 |
| 244~253년 | 위 | 고귀향공 | 불명 |
| 254년 | 위 | 황제 | 기록 |
| 255년 | 위 | 황제 | 불명 |
| 256~257년 | 위 | 황제 | 기록 |
| 258~259년 | 위 | 황제 | 불명 |
| 260년 | 위 | 황제 | 기록 |
어려서 학문을 좋아해 일찍 성숙했다고 한다.
정사 삼소제기: 정시 5년 고귀향공에 봉해졌고 어려서 학문을 좋아해 일찍 성숙했다. 제왕(조방)이 폐위되자 공경이 옹립을 논의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4 「少好學,夙成」
제왕이 폐위되자 낙양에 들어가 전각에서 즉위하고 조서로 사치품을 줄이고 상방 공예를 파한다.
정사 삼소제기: 10월 경인 낙양에 들어와 태후를 뵙고 같은 날 태극전에서 즉위했다. 대사면하고 개원했으며 승여·후궁 용도를 줄이고 상방·어부의 화려하고 무익한 물건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4 「其日即皇帝位於太極前殿」
태학에 가서 박사들과 역·서·예기의 뜻을 논변한다.
정사 삼소제기: 감로 원년 태학에 가 역박사 순우준, 박사 유준, 마조와 역의 연원·정현과 왕숙의 상서 주석 차이·요가 곤을 쓴 일 등을 따졌고 박사들은 대답을 잘 못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4 「帝幸太學,問諸儒」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하자 사마소가 직접 가서 평정한다.
정사 삼소제기: 감로 2년 제갈탄이 징소에 응하지 않고 반란해 양주자사 악침을 죽였다. 이듬해 2월 대장군 사마문왕(사마소)이 수춘을 함락하고 제갈탄을 베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4 「乙亥,諸葛誕不就徵,發兵反」
감로 5년 5월 사마소를 치려고 칼을 뽑아 좌우와 운룡문으로 나갔다가 전위에 살해된다.
정사 삼소제기: 태후의 령은 황제가 독살·거병을 꾀했다고 하고, 사마소의 상언은 황제가 칼을 뽑고 북을 울리며 신에게 향했다 하며 기독 성졸의 아우 성제가 병진 사이에 들어 공을 해쳤다고 적는다. 20세. 서인의 예로 장사하라는 령이 있었으나 공경이 왕의 예로 장사하게 했다.
연의: 연의 114회 — 연의 114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04 「躬自拔刃」
정사 손견전: 원술이 손견을 시켜 형주의 유표를 치게 했다. 유표가 황조를 보내 번성·등현 사이에서 맞서자 손견이 이를 깨고 한수를 건너 양양을 포위했다. 손견이 혼자 말을 타고 현산을 가다가 황조 군사에게 화살을 맞아 죽었다. 연의 7회는 유표의 장수 채모·괴월과의 싸움, 현산 매복 화살과 돌로 그린다.
연의: 연의 7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감로 5년 직접 칼을 뽑고 좌우를 이끌어 운룡문으로 나갔다가 전위에 죽었다(삼소제기). |
| 무력 | 50 | 직접 칼을 뽑아 병진 사이에 들어갔다(삼소제기: 躬自拔刃). |
| 지력 | 77 | 태학에서 박사들과 역·서·예기의 뜻을 따지고 정현·왕숙의 주를 비교해 박사들이 답을 못 했다(삼소제기). |
| 정치 | 50 | 정원 원년 사자를 사방에 보내 풍속을 살피고 백성을 위로하게 했다(삼소제기). |
| 매력 | 70 |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고 일찍 성숙해 공경이 옹립을 논의했다(삼소제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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