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55년사망 220년기록 연도 33해

생몰

출생 155년

사망 220년 — 건안 25년 정월(양력 220년 1월) 낙양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4년영천기도위기록
188년낙양서원팔교위기록
189년진류 · 다른 후보: 낙양효기교위기록
190년형양분무장군기록
191년복양동군태수기록
192년수장연주목기록
193년팽성연주목기록
194년복양연주목기록
195년정도연주목기록
196년허창 · 다른 후보: 낙양사공·거기장군기록
197년완사공기록
198년하비사공기록
199년관도사공기록
200년관도사공기록
201년창정사공기록
202년초사공기록
203년여양사공기록
204년업기주목 겸임기록
205년남피기주목기록
206년호관기주목기록
207년유성기주목기록
208년오림승상기록
209년합비승상기록
210년업승상기록
211년동관승상기록
212년업승상(213 위공)기록
213년업승상(213 위공)기록
214년업위공추정
215년한중위공기록
216년업위왕기록
217년유수구위왕기록
218년장안위왕기록
219년한중위왕기록
220년낙양위왕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년후한 조정기도위기록
185~187년후한 조정제남상 → 귀향(연대 불명)불명
188년후한 조정서원팔교위기록
189년후한 조정효기교위기록
190년위분무장군기록
191년위동군태수기록
192~195년위연주목기록
196년위사공·거기장군기록
197~203년위사공기록
204년위기주목 겸임기록
205~207년위기주목기록
208~211년위승상기록
212~213년위승상(213 위공)기록
214년위위공추정
215년위위공기록
216~220년위위왕기록

나온 사건·전투

184년 · 기도위 · 대승

기도위로 영천 황건 토벌에 참전, 수만 명을 벤 공으로 제남상에 오른다.

정사 무제기: 기도위로 영천의 황건 토벌에 참가해 황보숭·주준과 함께 적을 대파했다(수만 명 참수). 장사 화공은 황보숭전.

연의: 연의 1~2회 — 연의 1~2회가 유비 삼형제의 첫 전공과 함께 이 싸움을 다룬다.

관련: 영천 황건 토벌 · 장사 전투

189년 · 효기교위

낙양을 빠져나가 진류에서 거병한다.

정사 무제기: 동탁의 임명을 마다하고 이름을 바꿔 동쪽으로 달아나 진류에서 거병했다. 배송지 주(세어·손성 잡기)에 여백사 일가 살해 일화가 전한다.

연의: 연의 4~5회 — 연의 4~5회의 칠성도 동탁 암살 시도는 정사 본문에 없다.

관련: 조조, 진류에서 거병

190년 · 분무장군 · 대패

형양 변수에서 서영에게 대패, 조홍의 말로 겨우 빠져나온다.

정사 무제기: 형양 변수에서 서영과 싸워 패했다. 조홍전: 조홍이 자기 말을 조조에게 내주었다.

연의: 연의 6회 — 연의 6회가 같은 장면을 그린다.

관련: 형양 변수 전투

191년 · 동군태수 · 대승

동군에서 백요를 깨고 동군태수가 된다.

정사 무제기: 191년 동군 복양에서 백요를 대파했고 원소가 동군태수로 천거했다.

연의: 연의 10회 — 연의 10회는 동군태수 임명만 나오고 백요 격파는 그리지 않는다.

출전: 三國志 卷01 「白繞」

192년 · 연주목 · 대승

청주 황건 30여만을 항복시켜 정예를 청주병으로 편성한다.

정사 무제기: 192년 제북에서 항복을 받아 병사 30여만, 남녀 100여만 구를 얻고 정예를 청주병이라 불렀다.

연의: 연의 10회 — 연의 10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관련: 수장 전투(청주 황건)

출전: 三國志 卷01 「號爲青州兵」

193년 · 연주목

부친 조숭의 죽음을 이유로 서주 도겸을 쳐 여러 성을 함락한다.

정사 무제기: 193년 서주를 쳐 여러 성을 함락했다. 조숭 피살은 무제기가 도겸 탓으로 적고, 배송지 주 세어는 도겸 별장의 병사가 재물을 탐해 죽였다고 전한다.

연의: 연의 10~11회 — 연의 10~11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관련: 서주 공방(도겸 정벌)

출전: 三國志 卷01 「爲陶謙所害」

196년 · 사공·거기장군 · 승진

헌제를 허로 모시고 사공·거기장군이 된다.

정사 무제기 건안 원년: 7월 낙양에서 헌제를 만나고 9월 허로 도읍을 옮겼다.

연의: 연의 13~14회 — 연의 13~14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관련: 조조, 헌제를 허도로 모시다

198년 · 사공 · 대승

하비를 수공으로 깨고 여포를 처형한다.

정사 여포전: 12월 하비를 포위해 수공 끝에 송헌·위속·후성이 진궁을 잡아 항복했다. 여포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의: 연의 19회 — 연의 19회가 '백문루'의 장면으로 극화한다. 줄거리는 대체로 같다.

관련: 하비 전투, 여포의 최후 · 하비 전투

200년 · 사공

백마 포위를 풀고 연진으로 진군한다.

정사 관우전: 관우가 안량의 휘개를 보고 말을 달려 만군 속에서 찔러 목을 베어 돌아왔다. 조조는 한수정후로 봉했다.

연의: 연의 25~26회 — 연의 25회의 토산 약삼사는 정사에 없다.

관련: 백마 전투, 관우가 안량을 베다

200년 · 사공 · 대승

허유의 계책으로 오소를 직접 습격해 원소를 무너뜨린다.

정사 무제기·원소전: 조조군 1만 미만, 원소군 10여만. 허유가 투항해 오소를 알렸고 조조가 직접 오소를 쳐 순우경을 베었다. 조조가 맨발로 허유를 맞았다는 대목도 정사에 있다.

연의: 연의 30~31회 — 연의 30~31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관도대전, 오소 습격

204년 · 기주목 겸임 · 승진

업을 함락하고 기주목을 겸한다.

정사 무제기: 건안 9년 8월 업을 깨고 기주목을 겸했다.

연의: 연의 32회 — 연의 32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관련: 업 공방

출전: 三國志 卷01 「領冀州牧」

207년 · 기주목 · 대승

오환을 정벌해 백랑산에서 답돈을 베고 북방을 평정한다.

정사 무제기: 건안 12년 8월 백랑산에서 오환을 대파했다.

연의: 연의 33회 — 연의 33회는 답돈을 冒頓으로 적고, 곽가의 유계(요동 평정)는 정사에 없다.

관련: 백랑산 전투

출전: 三國志 卷01 「白狼山」

208년 · 승상 · 대패

적벽에서 화공에 패해 북으로 돌아간다.

정사 무제기·주유전·황개전·오주전: 적벽에서 조조군이 크게 패했다. 화공은 정사에도 있다(황개의 거짓 항복·화선).

연의: 연의 45~49회 —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이 칠성단에서 동남풍을 빌린 일, 황개의 고육계는 연의 45~49회의 창작이다(전투 패널의 「연의 창작」 참고).

관련: 적벽대전

208년 · 승상

화용도를 거쳐 진창과 역병 속에서 북으로 물러난다.

정사 무제기: 적벽에서 싸워 불리했고 역병이 돌아 관리와 병사 다수가 죽자 군을 물렸다. 배송지 주 ― 山陽公載記: 화용도로 걸어 철수하다 진창에 막혀 약한 병사들이 풀을 지고 길을 메웠고 사람과 말에 밟혀 죽은 자가 많았다.

연의: 연의 50회 —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막았다 놓아줬다는 연의 50회 이야기는 정사에 없다.

관련: 조조의 철수(화용도)

211년 · 승상 · 대승

동관에서 마초·한수를 깨뜨리고 관중을 평정한다.

정사 무제기: 건안 16년 동관에서 마초·한수와 싸워 이간책으로 깼다.

연의: 연의 58~59회 — 연의 58~59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동관 전투(조조 대 마초·한수)

출전: 三國志 卷01 「潼關」

213년 · 승상(213 위공) · 승진

위공에 올라 구석을 받는다.

정사 무제기: 건안 18년 5월 위공에 올랐다. 정월 유수에서 손권과 한 달 남짓 대치했다.

연의: 연의 61회 — 연의 61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01 「魏公」

215년 · 위공 · 대승

한중에서 장로를 항복시킨다.

정사 무제기: 건안 20년 7월 양평관을 깨고 11월 장로가 항복했다.

연의: 연의 67회 — 연의 67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01 「魯自巴中將其餘衆降」

219년 · 위왕 · 대패

한중에서 유비에게 밀려 철수한다. 철수 때 '계륵'이라는 군령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배송지 주 ― 九州春秋).

정사 무제기: 건안 24년 5월 한중에서 철수해 장안으로 돌아왔다. 배송지 주 ― 九州春秋: 왕이 돌아가려 '계륵'이라는 군령을 내리자 주부 양수가 뜻을 알고 짐을 쌌다.

연의: 연의 72회 — 연의 72회가 같은 일화를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01 「夏五月引軍還長安」 / 三國志 卷01 주(九州春秋) 「時王欲還出令曰雞肋」

220년 · 위왕

낙양에서 66세로 죽는다.

정사 무제기: 건안 25년 정월 낙양에서 죽었다(66세). 선제기: 사마의가 상사를 수습했다. 화타전: 조조가 화타를 죽인 것은 그보다 훨씬 앞의 일이다(조충 사후 후회 기사).

연의: 연의 78회 — 연의 78회는 화타 처형과 조조의 죽음을 잇는다. 정사와 다르다.

관련: 조조의 죽음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84년 · 광종 전투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황보숭이 장각의 아우 장량과 광종에서 싸웠다. 첫날은 장량군이 정예여서 이기지 못했고, 이튿날 영문을 닫고 쉬며 적이 느슨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새벽닭이 울 때 급습해 대파했다. 장각은 이미 병으로 죽어 있었다. 연의 1회는 노식이 장각과 광종에서 대치하다 황문 좌풍의 참소로 압송되는 것으로, 2회는 황보숭·조조가 장량을 곡양에서 치는 것으로 달리 그린다.

연의: 연의 1~2회

190년 · 호뢰관 전투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190년 · 형양 전투

정사 무제기: 반동탁 연합이 움직이지 않자 조조가 홀로 서쪽으로 성고를 노려 진군하다 형양 변수에서 동탁의 장수 서영과 싸워 크게 패했다. 조조는 유시에 맞고 말이 다쳤으며 사촌동생 조홍이 말을 내주어 밤에 달아났다. 서영은 조조 군이 적은데도 하루 종일 힘껏 싸운 것을 보고 산조를 쉽게 치기 어렵다고 여겨 물러났다.

연의: 연의 6회

194년 · 복양 전투

정사 무제기·여포전: 장막·진궁이 조조를 배반해 여포를 맞아 연주목으로 세웠다. 군현이 호응했으나 견성·동아·범현은 순욱·정욱이 지켜냈다. 조조가 서주에서 돌아와 복양에서 싸웠으나 불리했고 백여 일 대치했다. 조조는 여포의 기병이 청주병을 먼저 때리자 진이 흐트러지고 불길 속에서 말에서 떨어져 왼손바닥을 데었다. 그해 메뚜기 떼가 일어 곡식이 모자라 양쪽이 군을 물렸다.

연의: 연의 11~12회

195년 · 거야 전투

정사 무제기: 195년 봄 조조가 정도를 습격했고,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이봉이 거야에 주둔하자 조조가 공격했다. 여포가 구원했으나 설란이 패해 여포는 달아났고, 조조는 설란 등을 벴다. 여포가 동민에서 진궁과 1만여 명을 이끌고 다시 오자 조조는 병력이 적어 매복을 두고 기병을 풀어 크게 이겼다. 여포는 밤에 달아났고 조조가 정도를 다시 얻으니 여포는 동쪽 유비에게로 갔다.

연의: 연의 12회

197년 · 완성 전투(장수)

정사 무제기·장수전: 197년 정월 조조가 완에 이르자 장수가 항복했다가 곧 뉘우쳐 다시 반란했다. 장수전은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들이자 장수가 한을 품고 습격했다고 적는다. 조조는 싸움에 졌고 유시에 맞았으며 장자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전위가 문을 지키며 버텨 조조가 가벼운 기병으로 빠져나갔고 전위도 전사했다. 연의 16회는 장수 숙모 추씨와의 관계, 가후의 계책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16회

197년 · 진 전투(원술 격퇴)

정사 무제기: 197년 가을 9월 원술이 진을 침범하자 조조가 동쪽으로 정벌했다. 원술은 조조가 직접 온다는 말에 군을 버리고 달아나며 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겼는데, 조조가 이르러 교유 등을 깨고 모두 베었다. 원술은 회수를 건너 달아났다. 연의 17회는 조조 마보군 17만과 손책·유비·여포의 합류, 군량 문제로 창관 왕후를 벤 일화를 더한다.

연의: 연의 17회

198년 · 소패 전투(고순)

정사 여포전·무제기: 198년 여포가 다시 원술을 위해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치게 했다.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고 유비도 고순에게 패했다. 이 일로 9월 조조가 직접 여포를 정벌했다. 고순은 영문에서 정예 700여 명을 이끌어 함진영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영웅기에 있다.

연의: 연의 14회

200년 · 백마 전투

정사 무제기·관우전: 200년 2월 원소가 안량을 보내 백마에서 동군태수 유연을 포위하자, 순유의 계책으로 조조가 연진에서 도하하는 척해 원소의 군을 서쪽으로 끌어낸 다음, 가벼운 군으로 백마를 급습했다. 장료·관우가 선봉으로 올라 안량을 베고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관우전은 관우가 만군 속에서 안량의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고 전한다.

연의: 연의 25~26회

200년 · 관도 전투

정사 무제기·원소전: 200년 2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원소는 정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도를 치려 했고, 조조는 관도에 군을 모으고 병력이 1만에 못 미쳐 사상자가 열에 두셋이었다. 원소는 높은 망루와 토산에서 영채에 화살을 쏘았고 조조는 발석거(벽력거)로 이를 부수었다. 원소가 땅굴을 파자 조조는 안에 긴 참호를 팠다. 군량이 모자라던 때 허유가 항복해 순우경의 오소 군량 수송을 알리자 조조는 보기 5천으로 밤에 오소를 급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장합·고람이 항복하자 원소군이 무너졌다.

연의: 연의 30~31회

201년 · 창정 전투

정사 무제기: 201년 4월 조조가 황하 가에서 군세를 보이고 원소의 창정 주둔군을 깨뜨렸다. 원소는 돌아가 흩어진 군을 수습하고 반란한 군현을 쳤다. 연의 31회는 원소가 4주 군 20~30만을 이끌고 창정에 이르러, 정욱의 십면매복으로 크게 깨진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1회

202년 · 여양 전투

정사 무제기: 원소가 죽자 아들 원담이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여양에 주둔했다. 202년 가을 조조가 정벌해 연전하자 원담·원상이 고수했다. 203년 봄 3월 조조가 외곽을 치니 이들이 나와 싸웠으나 대패해 밤에 달아났다. 연의 32회는 원상이 사환을 벤 뒤 직접 나와 장료와 맞서 크게 패하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2회

205년 · 남피 전투

정사 무제기: 업이 함락된 뒤 원담이 감릉·안평·발해·하간을 빼앗자, 조조가 절교 편지를 보내고 진군했다. 원담이 평원을 버리고 남피로 달아났다. 12월 조조가 평원에 들어가 주변 현을 평정했고, 205년 정월 남피를 쳐서 원담을 베고 그 처자를 죽였다. 연의 33회는 한겨울 하천이 얼어 군량선이 움직이지 못하자 백성에게 얼음을 깨게 하는 이야기를 더한다.

연의: 연의 33회

206년 · 호관 전투

정사 무제기: 원소의 생질 고간이 병주자사로 있다가 조조가 오환 정벌에 나선 사이 병주를 들어 반란하고 상당태수를 잡아 호관구를 지켰다. 조조가 악진·이전에게 치게 했으나 고간이 호관성으로 물러나 지켰다. 206년 정월 조조가 직접 정벌하자 고간은 별장에게 성을 맡기고 흉노 선우에게 구원을 청하러 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조가 호관을 포위해 3월에 함락했다.

연의: 연의 33회

208년 · 장판 전투

정사 선주전: 유표가 죽고 유종이 항복했으나 유비는 형주 백성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갔다. 당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10여만, 치중이 수천 량이었고 하루 십여 리를 갔다. 조조가 양양에서 유비가 지나간 것을 알고 정기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달아났다. 장비는 20기로 후미를 맡아 물가 다리를 끊고 맞섰고, 조운은 어린 아들(후주)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낸다.

연의: 연의 41~42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96관도(200)에서 1만 미만 병력으로 원소 10여만을 꺾었다(무제기).
무력72형양 변수(190)에서 말을 잃고 조홍의 말로 탈출 — 직접 싸웠으나 일기당천 기록은 없다(조홍전).
지력91오소 습격을 직접 결정했고 손자병법 주해를 남겼다(무제기).
정치94둔전제와 구현령으로 중원을 재건했다(무제기).
매력96순욱·곽가 등 모사와 하후돈 같은 종친 장수가 모여들었다(무제기).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조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