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32년 — 폐위 때 나이 23세(使者持節送衞…年二十三)에서 환산한 값. 출신은 명제가 길러 궁중에서도 비밀이었다(제왕기).
사망 274년 — 사망 연도 불명(삼국지 위서는 폐위 이후를 쓰지 않는다). 274년은 계산용 가정값이다.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35년 | 낙양 | 제왕 | 기록 |
| 236년 | 낙양 | 제왕 | 기록 |
| 237년 | 낙양 | 제왕 | 기록 |
| 238년 | 낙양 | 제왕 | 기록 |
| 239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0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1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2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3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4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5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6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7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8년 | 낙양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9년 | 낙양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0년 | 낙양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1년 | 낙양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2년 | 낙양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3년 | 낙양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4년 | 낙양 · 다른 후보: 회 | 황제 → 제왕으로 폐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32~234년 | 위 | (명제가 기른 양자, 출신 비밀) | 불명 |
| 235~238년 | 위 | 제왕 | 기록 |
| 239~248년 | 위 | 황제(조상·사마의 보정) | 기록 |
| 249~253년 | 위 | 황제(사마씨 집권) | 기록 |
| 254년 | 위 | 황제 → 제왕으로 폐위 | 기록 |
| 255~274년 | 위 | 제왕(하내 중문에 머묾) | 불명 |
청룡 3년 명제의 양자로 제왕에 봉해진다.
정사 제왕기: 명제에게 아들이 없어 왕과 진왕 순을 길렀고 청룡 3년 제왕으로 세워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4 「立為齊王」
경초 3년 정월 명제가 위독하자 황태자가 되어 같은 날 즉위, 대장군 조상과 태위 사마의가 보정한다.
정사 제왕기: 경초 3년 정월 정해 초하루, 명제가 병이 깊어 곧 황태자로 세웠고 이날 황제 자리에 올랐다. 대장군 조상과 태위 사마선왕이 보정했다.
연의: 연의 106회 — 연의 106회가 어린 조방의 즉위와 조상·사마의의 탁고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4 「是日,即皇帝位,大赦」 / 三國志 卷04 「大將軍曹爽、太尉司馬宣王輔政」
정월 황제가 고평릉을 참배하러 나간 사이 태부 사마의가 대장군 조상 형제를 면직한다.
정사 제왕기: 가평 원년 정월 갑오 황제가 고평릉에 행차했을 때 태부 사마선왕이 대장군 조상과 그 동생들을 면직시키도록 아뢰었다.
연의: 연의 107회 — 연의 107회가 고평릉 정변을 극화한다.
관련: 고평릉 사변
출전: 三國志 卷04 「車駕謁高平陵。太傅司馬宣王奏免大將軍曹爽」
태후의 조서로 황제에서 폐위되어 제왕으로 돌려보내지고 하내의 중문에 머문다.
정사 제왕기: 가평 6년 9월 대장군 사마경왕이 폐위를 꾀해 태후에게 아뢰었다. 태후가 '황제는 만기를 친히 보지 않고 내총과 광대에 빠져…종묘를 받들 수 없다'며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날 별궁으로 옮겼고 23세였다.
연의: 연의 109회 — 연의 109회가 사마사의 폐립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4 「遣芳歸藩于齊,以避皇位」 / 三國志 卷04 「營齊王宮於河內重門」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직접 군을 거느린 기록이 없다. 기본값.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이 없다. |
| 지력 | 50 | 태후의 폐위 조서가 '친히 만기를 보지 않고 내총에 빠졌다'고 평한다(제왕기). 낮게 둔다. |
| 정치 | 50 | 정시 초에 정사를 조상·사마의가 보좌했고 친조는 7월에야 시작했다(제왕기). |
| 매력 | 50 | 논어·상서·예기 강독을 마치고 공자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서술이 있다(제왕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방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