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23년 — 황초 4년 입조 중 낙양 저택에서 병사(223)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8년 | 탁군 | 북중랑장·행효기장군 | 기록 |
| 219년 | 장안 | 월기장군 | 기록 |
| 223년 | 낙양 | 임성왕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16~217년 | 위 | 언릉후 | 불명 |
| 218년 | 위 | 북중랑장·행효기장군 | 기록 |
| 219년 | 위 | 월기장군 | 기록 |
| 220~221년 | 위 | 월기장군 | 불명 |
| 222년 | 위 | 임성왕 | 불명 |
| 223년 | 위 | 임성왕 | 기록 |
건안 21년 언릉후에 봉해진다.
정사 조창전: 어려서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힘이 남달라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았다. 조조가 독서를 권하자 「위청·곽거병 같은 장수가 되겠다」고 답했다. 건안 21년 언릉후에 봉해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封鄢陵侯」
대군 오환의 반란을 치러 가서 탁군 경계에서 반호 수천 기를 맞아 싸우고 상건까지 추격해 크게 깨 선비 가비능이 복종한다.
정사 조창전: 건안 23년 대군 오환이 반란하자 북중랑장·행효기장군이 되어 갔다. 탁군 경계에서 반호 수천 기가 갑자기 이르자 전예의 계책으로 요충을 지켜 물리쳤고 직접 맞붙어 활을 쏘았으며 갑옷에 화살이 여러 개 박혀도 의기가 더 치솟았다. 상건까지 쫓아가 하루 밤낮으로 맞붙어 크게 깨 천 단위로 베고 사로잡았다. 선비 가비능이 수만 기로 관망하다 복종을 청해 북방이 평정되었다.
연의: 연의 72회 — 연의 72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19 「身自搏戰,射胡騎,應弦而倒者前後相屬」
조조가 동쪽으로 돌아가며 월기장군으로 장안에 남게 하고, 조조가 낙양에서 병들어 부르는 사이 조조가 죽는다.
정사 조창전: 조조가 동쪽으로 돌아가며 조창을 행월기장군으로 삼아 장안에 남겼다. 조조가 낙양에서 병이 들어 역마로 불렀으나 이르기 전에 조조가 죽었다.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제후와 함께 봉국으로 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以彰行越騎將軍,留長安」
황초 3년 임성왕이 된다.
정사 조창전: 황초 2년 공으로 올랐고 3년 임성왕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立為任城王」
황초 4년 경도에 입조했다가 저택에서 병사하고, 한 동평왕의 전례로 장례를 받는다.
정사 조창전: 황초 4년 경도에 조회하러 갔다가 저택에서 병으로 죽어 시호가 위(威)였다. 장례에 난로·용기·호분 100명을 내려 한 동평왕의 고사를 따랐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9 「疾薨於邸」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8 | 건안 23년 대(代) 오환을 쳐 상건까지 추격해 크게 깨고 선비 가비능이 복종하게 했다(임성왕 조창전). |
| 무력 | 93 |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고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싸움에서 직접 맞붙어 활을 쏘았다(조창전). |
| 지력 | 50 | 「군을 이끌고 갈 때는 이로움이 있는 곳이 있을 뿐 절도가 무슨 상관이냐」며 장수들의 신중론을 물리치고 추격해 이겼다(조창전). |
| 정치 | 50 | 정무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
| 매력 | 61 | 조조에게 「위·곽 같은 장수가 되고 싶지 박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공을 장수들에게 돌려 조조가 「누런 수염 아이가 정말 기특하다」고 했다(조창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창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