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7년 — 중평 4년 겨울 초에서 출생, 황초 7년(226) 40세 졸(문제기)
사망 226년 — 황초 7년(226) 5월 정사일 가복전에서 붕어, 40세(문제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7년 | 업 | 위 태자 | 기록 |
| 218년 | 업 | 위 태자 | 기록 |
| 219년 | 업 | 위 태자 | 기록 |
| 220년 | 업 | 승상·위왕 → 황제 | 기록 |
| 221년 | 낙양 | 황제 | 기록 |
| 222년 | 낙양 | 황제 | 기록 |
| 223년 | 낙양 | 황제 | 추정 |
| 226년 | 낙양 | 황제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7~210년 | 위 | (조조의 아들) | 불명 |
| 211~216년 | 위 | 오관중랑장·부승상 | 불명 |
| 217~219년 | 위 | 위 태자 | 기록 |
| 220년 | 위 | 승상·위왕 → 황제 | 기록 |
| 221~222년 | 위 | 황제 | 기록 |
| 223년 | 위 | 황제 | 추정 |
| 224~225년 | 위 | 황제 — 수군을 이끌고 순유·광릉까지 순행 | 불명 |
| 226년 | 위 | 황제 | 기록 |
건안 22년 위 태자로 책봉된다.
정사 문제기: 건안 16년 오관중랑장·부승상이 되었고 22년 위 태자가 되었다. 태조가 죽자 뒤를 이어 승상·위왕이 되었다. 건안 25년을 연강 원년으로 고쳤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2 본 「爲五官中郎將副丞相二十二年立爲魏太子太祖崩嗣位爲丞相魏王」
조조가 죽자 승상·위왕을 이어받고, 그해 11월 한 헌제의 선양을 받아 번양에 단을 쌓고 즉위해 연호를 황초로 고친다. 헌제는 산양공에 봉한다.
정사 문제기: 한 황제가 중망이 위에 있다 하여 장음에게 새수를 받들고 선위하게 했다. 번양에 단을 쌓고 왕이 단에 올라 즉위했으며 연강을 황초로 고치고 대사했다. 황초 원년 11월 계유 하내 산양읍 만 호로 한 황제를 산양공에 봉하고 한의 정삭을 쓰게 했다.
연의: 연의 80회
출전: 三國志 卷02 본 「王升壇即阼百官陪位事訖降壇視燎成禮而反改延康爲黃初大赦」
오의 손권이 유비를 이릉에서 깨자, 유비가 700리 연영을 쳤다는 소식에 '병법을 모른다. 험한 곳에 군을 두면 적에게 잡힌다'고 하고 7일 뒤 승전 보고가 온다.
정사 문제기: 윤월 손권이 유비를 이릉에서 깼다. 앞서 황제는 유비가 동으로 내려와 손권과 싸우며 나무 울타리로 700여 리에 연영을 쳤다는 말을 듣고 군신에게 '유비는 병법을 모른다. 어찌 700리 영채로 적을 막겠는가. 험한 곳을 끼고 군을 두는 자는 적에게 잡힌다 하니 이것이 병가의 금기다. 손권의 상주가 곧 올 것'이라 했고 7일 뒤 유비를 깼다는 글이 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2 본 「孫權破劉備於夷陵初帝聞備兵東下與權交戰樹柵連營七百餘里謂羣臣曰備不曉兵」
병이 위독해지자 조진·진군·조휴·사마의에게 유조로 후계를 부탁한 뒤 가복전에서 붕어한다. 40세.
정사 문제기: 황초 7년 5월 병진 황제의 병이 위독해 중군대장군 조진·진군대장군 진군·정동대장군 조휴·무군대장군 사마의를 불러 함께 유조를 받아 후계를 보필하게 했다. 정사일 가복전에서 붕어했고 40세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2 본 「帝疾篤召中軍大將軍曹真鎮軍大將軍陳羣征東大將軍曹休撫軍大將軍司馬宣王並受遺詔輔嗣主」
정사 무제기: 204년 4월 조조가 조홍에게 업의 포위를 맡기고 토산·땅굴을 파고 참호를 두르며 장수(漳水)를 터 성을 물에 잠가 성중 굶어 죽은 자가 절반을 넘었다. 7월 원상이 구원하러 돌아와 서산을 따라 오다 조조에게 막혀 달아났다. 8월 심배의 조카 심영이 밤에 성 동문을 열어 조조군이 들어와 심배를 사로잡았다. 연의 32회는 허유의 수공 계책과 지하도로 그린다.
연의: 연의 3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오 정벌을 위해 직접 수군을 이끌고 광릉까지 이르렀다(문제기). |
| 무력 | 70 | 『문제기』 본문에 직접 무용 기록은 적다. 어린 시절 사냥·활쏘기를 즐겼다는 기록은 배송지 주에 있다. |
| 지력 | 81 | 유비의 700리 연영 소식에 '병법에 무지하다. 험한 지형에 군을 두는 것은 병가의 금기'라 단정하고 7일 뒤 승전 보고가 왔다(문제기). |
| 정치 | 82 | 구품관인법·태학 설립·오경 과시법·박사 설치 등 제도를 정비했다(문제기). |
| 매력 | 76 | 한 헌제의 선양을 받아 산양공에 봉하고 천자의 예로 대우했다(문제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비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