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49년 — 정시 10년(249) 정월 고평릉 정변 후 처형, 삼족 멸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39년 | 낙양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기록 |
| 244년 | 장안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기록 |
| 249년 | 낙양 | 대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7~238년 | 위 | 산기시랑→성문교위→무위장군 | 불명 |
| 239년 | 위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기록 |
| 240~243년 | 위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불명 |
| 244년 | 위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기록 |
| 245~248년 | 위 | 대장군·녹상서사(사마의와 보정) | 불명 |
| 249년 | 위 | 대장군 | 기록 |
명제가 병들자 대장군으로 와내에서 유조를 받아 사마의와 어린 황제를 보정한다.
정사 조진전 附 조상: 명제가 병들자 조상을 침실로 불러 대장군·가절월·도독중외제군사·녹상서사에 임명했고, 태위 사마의와 함께 유조를 받아 어린 황제를 보좌하게 했다.
연의: 연의 106회
출전: 三國志 卷09 「拜大將軍假節鉞都督中外諸軍事錄尚書事與太尉司馬宣王並受遺詔輔少主」
정시 5년 낙곡으로 촉을 치려 장안에서 6, 7만을 동원했으나 진령에 막혀 철수한다.
정사 조진전 附 조상: 등양 등이 위세를 세우자며 촉 정벌을 권해 조상이 장안에서 병사 6, 7만을 동원해 낙곡으로 들어갔으나 산에 의지한 적에게 막혀 전진하지 못했고 참군 양위의 조언을 듣고서야 철군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大發卒六七萬人從駱穀入」 / 三國志 卷09 「爽不恱乃引軍還」
고평릉 참배 중 사마의가 낙수 부교를 장악하자 병권을 내놓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처형된다.
정사 조진전 附 조상: 정시 10년 정월 황제가 고평릉에 행차하자 조상 형제가 따랐고 사마의가 무고를 장악해 낙수 부교에 주둔했다. 조상은 환범의 허창행 건의를 따르지 못하고 허윤·진태의 권으로 귀죄해 후로 집에 돌아갔으나, 장당의 진술로 하안·등양과 함께 역모로 몰려 삼족이 멸해졌다.
연의: 연의 106회
출전: 三國志 卷09 「十年正月車駕朝高平陵爽兄弟皆從」 / 三國志 卷09 「於是收爽羲訓晏颺謐軌勝範當等皆伏誅夷三族」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3 | 정시 5년 낙곡 출병은 병마 6, 7만으로 시작해 진령에서 막혀 소득 없이 돌아왔다(조진전 附 조상). |
| 무력 | 평가 불가 | 개인 무용 기록은 없다. |
| 지력 | 52 | 참군 양위의 철군 조언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조진전 附 조상). |
| 정치 | 50 | 도성 통치에서 하안·등양 등을 곁에 두고 사마의를 태부로 올려 권한을 줄이려 했다(조진전 附 조상). |
| 매력 | 50 | 종실 출신으로 명제의 친애를 받아 대장군이 되었다(조진전 附 조상).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상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