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5년경(추정) — 생년 불명(19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64년 — 경요 6년 다음 해(264) 정월 성도에서 난병에게 피살(장익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3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4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5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6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7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8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29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30년 | 성도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31년 | 남중 | 교강도독·수남중랑장 — 남이 유주 토벌 | 기록 |
| 232년 | 남중 | (소환 대기 중에도 군수 정비) | 기록 |
| 233년 | 남중 | (소환 대기 중에도 군수 정비) | 기록 |
| 234년 | 오장원 | 전군도독·영 부풍태수 → 전령군 | 기록 |
| 235년 | 성도 | 전령군 | 추정 |
| 236년 | 성도 | 전령군 | 추정 |
| 237년 | 성도 | 전령군 | 추정 |
| 238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39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0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1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2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3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4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5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6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7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8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49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0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1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2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3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4년 | 성도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5년 | 적도 | 진남대장군 — 적도 출정 반대 | 기록 |
| 256년 | 성도 | 진남대장군 | 추정 |
| 257년 | 성도 | 진남대장군 | 추정 |
| 258년 | 성도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59년 | 성도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60년 | 성도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61년 | 성도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62년 | 성도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63년 | 검각 | 좌거기장군 — 검각에서 종회에게 항복 | 기록 |
| 264년 | 성도 | (위 군영에서 성도 입성) → 난병에게 피살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14~222년 | 촉한 | 서좌 → 효렴 → 강양장 → 부릉령 → 재동태수 | 불명 |
| 223~230년 | 촉한 | 광한·촉군태수 | 추정 |
| 231년 | 촉한 | 교강도독·수남중랑장 — 남이 유주 토벌 | 기록 |
| 232~233년 | 촉한 | (소환 대기 중에도 군수 정비) | 기록 |
| 234년 | 촉한 | 전군도독·영 부풍태수 → 전령군 | 기록 |
| 235~237년 | 촉한 | 전령군 | 추정 |
| 238~254년 | 촉한 | 상서 → 독건위 → 정서대장군 | 기록 |
| 255년 | 촉한 | 진남대장군 — 적도 출정 반대 | 기록 |
| 256~257년 | 촉한 | 진남대장군 | 추정 |
| 258~262년 | 촉한 | 좌거기장군·영 기주자사 | 기록 |
| 263년 | 촉한 | 좌거기장군 — 검각에서 종회에게 항복 | 기록 |
| 264년 | 위 | (위 군영에서 성도 입성) → 난병에게 피살 | 기록 |
교강도독으로 부임해 남이 우두머리 유주의 반란을 토벌하다 소환 명을 받고도 후임이 오기 전까지 군량 조달과 방비를 이어 가며 마충에게 터를 닦아 준다.
정사 장익전: 건흥 9년 교강도독·수남중랑장이 되었다. 성격이 엄해 이민의 환심을 얻지 못했고 우두머리 유주가 반란하자 거병해 토벌했다. 유주를 깨기 전 소환 명이 있었으나 '후임이 오지 않았고 전장에 임했으니 군량을 쌓아 적을 멸할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 물러난다고 공무를 폐할 수 없다'고 하며 군을 늦추지 않고 통솔해 후임이 와서야 떠났다. 마충이 그 터를 이어 유주를 깨뜨렸고 제갈량이 이를 듣고 칭찬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5 본 「於是統攝不懈代到乃發馬忠因其成基以破殄冑丞相亮聞而善之」
강유가 다시 출군하려 하자 조정에서 '나라는 작고 백성이 지쳤으니 무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반대한다. 강유가 듣지 않고 장익을 데려가 적도에서 위 옹주자사 왕경을 크게 깨니 장익이 '그만 멈추라, 더 나가다 이 큰 공을 해칠 수 있다'고 하자 강유가 '뱀을 그리고 발을 단다'며 분노한다. 연희 18년.
정사 장익전: 연희 18년 위장군 강유와 함께 성도에 돌아왔다. 강유가 다시 출병하자고 의논하자 오직 장익만 조정에서 다투어 '나라는 작고 백성은 수고로우니 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강유가 듣지 않고 장익 등을 데리고 나가 장익의 지위를 진남대장군으로 올렸다. 강유가 적도에 이르러 옹주자사 왕경을 대파해 왕경의 무리가 조수에서 죽은 자가 만으로 헤아렸다. 장익이 '그만두어야 한다. 더 나가면 이 큰 공을 해칠 수 있다'고 하자 강유가 크게 노하여 '뱀을 그리고 발을 단다'고 했다. 강유는 끝내 왕경을 적도에서 포위했으나 성을 이기지 못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5 본 「維議復出軍唯翼廷爭以為國小民勞不宜黷武維不聽將翼等行進翼位鎮南大將軍」
검각에서 강유와 함께 종회에게 항복하러 부로 나아가고, 이듬해 정월 종회를 따라 성도에 들어가 난병에게 피살된다.
정사 장익전: 경요 6년 강유와 함께 검각에 있다가 함께 부에서 종회에게 항복했다. 이듬해 정월 종회를 따라 성도에 이르러 난병에게 피살되었다.
연의: 연의 118회
관련: 검각 대치
출전: 三國志 卷45 본 「六年與維咸在劍閣共詣降鍾會於涪」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건흥 9년 교강도독으로 남이 유주 토벌을 이끌고 계속 통솔해 마충이 이를 마무리하도록 했다(장익전). |
| 무력 | 62 | 무용 기록은 적다. 유주 토벌 때 군무를 이어 가다 전군을 인계했다(장익전). |
| 지력 | 64 | 강유의 확전을 '나라는 작고 백성이 지쳤으니 무를 남용치 말라'며 조정에서 반대했다(장익전). 적도 대승 뒤 진군을 막으며 '뱀을 그리고 발을 단다'는 강유의 비난을 샀다. |
| 정치 | 63 | 법 집행이 엄해 이민의 환심을 얻지 못했다(장익전). |
| 매력 | 58 | 건위·전군도독 등 문무 직책을 두루 맡았으나 마지막에 종회에게 항복했다(장익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익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