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8년경(추정) — 생년 불명(178년경 추정, '70세 넘어 대장군'이라는 관상가 말과 졸년에서 역산).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51년 — 연희 14년(251) 졸(등지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9년 | 성도 | 상서 | 추정 |
| 220년 | 성도 | 상서 | 추정 |
| 221년 | 성도 | 상서 | 추정 |
| 222년 | 성도 | 상서 | 추정 |
| 223년 | 무창 | 상서 — 오에 사자 | 기록 |
| 224년 | 한중 | 상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25년 | 한중 | 상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26년 | 한중 | 상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27년 | 한중 | 상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28년 | 기곡 | 중감군 — 기곡에서 조진군을 맞아 조운과 함께 방어 | 기록 |
| 229년 | 한중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0년 | 한중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1년 | 한중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2년 | 한중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3년 | 한중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4년 | 강주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5년 | 강주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6년 | 강주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7년 | 강주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8년 | 강주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9년 | 강주 | 강주 도독 | 추정 |
| 240년 | 강주 | 강주 도독 | 추정 |
| 241년 | 강주 | 강주 도독 | 추정 |
| 242년 | 강주 | 강주 도독 | 추정 |
| 243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기록 |
| 244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45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46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47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48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기록 |
| 249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50년 | 강주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51년 | 강주 | 거기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213년 | 기타·재야 | (한말 입촉, 파서태수 방희에게 의지 — 연대 불명) | 불명 |
| 214~218년 | 촉한 | 비 저각독 → 비령 → 광한태수 | 불명 |
| 219~222년 | 촉한 | 상서 | 추정 |
| 223년 | 촉한 | 상서 — 오에 사자 | 기록 |
| 224~227년 | 촉한 | 상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28년 | 촉한 | 중감군 — 기곡에서 조진군을 맞아 조운과 함께 방어 | 기록 |
| 229~233년 | 촉한 | 중감군·양무장군 | 추정 |
| 234~238년 | 촉한 | 전군사·전장군·연주자사 영·양무정후 → 강주 도독 | 기록 |
| 239~242년 | 촉한 | 강주 도독 | 추정 |
| 243년 | 촉한 | 거기장군 가절 | 기록 |
| 244~247년 | 촉한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48년 | 촉한 | 거기장군 가절 | 기록 |
| 249~250년 | 촉한 | 거기장군 가절 | 추정 |
| 251년 | 촉한 | 거기장군 | 기록 |
선주가 죽은 뒤 오촉 관계를 다시 맺기 위해 제갈량이 사자로 보내자 손권을 만나 '오와 촉은 사주 땅과 삼강의 험으로 순망치한을 이루면 천하를 겸병할 수 있다'고 설득해 위와 절교하고 촉과 연합하게 한다. 손권이 '화합 두 나라는 오직 등지뿐'이라 칭찬한다.
정사 등지전: 선주가 영안에서 죽자 손권이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 염려한 제갈량이 등지를 사자로 보냈다. 손권이 선뜻 만나지 않자 등지가 '신이 지금 온 것은 오를 위해서도, 촉만을 위해서도 아니라'고 표해 만났다. 등지가 '오와 촉 두 나라, 사주의 땅, 대왕은 명세의 영웅이고 제갈량도 일세의 걸물, 촉에는 험한 요새가 있고 오에는 삼강의 막힘이 있으니 이 두 장점을 합쳐 순치가 되면 나아가 천하를 겸병하고 물러나도 솥발처럼 설 수 있다'고 했다. 손권이 한참 말없다가 '그대의 말이 옳소'라 하고 위와 끊고 촉과 화합해 장온을 사자로 보냈다.
연의: 연의 86회
출전: 三國志 卷45 본 「吳蜀二國四州之地大王命世之英諸葛亮亦一時之傑也蜀有重險之固吳有三江之阻合此二長共為脣齒進可並兼天下退可鼎足而立」
제갈량이 기산을 공격하는 동안 조운과 함께 조진군을 막으려 기곡으로 나아가 병력이 약해 패하나 군을 거두어 굳게 지켜 대패를 면한다.
정사 조운전: 제갈량이 군을 일으켜 소리를 내며 사곡도로 나오자 조진이 큰 무리로 맞섰다. 제갈량이 조운과 등지에게 막게 하고 자신은 기산을 공격했다. 조운·등지의 군은 약하고 적은 강해 기곡에서 불리했으나 군을 거두어 굳게 지켜 큰 패배에 이르지 않았다.
연의: 연의 95회
관련: 기곡 양동과 조운의 퇴각
출전: 三國志 卷36 본 「亮令雲與鄧芝往拒而身攻祁山雲芝兵弱敵強失利於箕谷然斂眾固守不至大敗」
부릉국 사람이 도위를 죽이고 반란하자 군을 이끌고 토벌해 우두머리를 효수하고 백성을 안도시킨다. 연희 11년.
정사 등지전: 연희 6년 거기장군으로 옮겼다가 뒤에 가절을 받았다. 연희 11년 부릉국 사람이 도위를 죽이고 반란하자 등지가 군을 이끌고 토벌해 그 우두머리를 효수하고 백성이 안도했다. 14년에 졸했다. 등지는 장군으로 20여 년 상벌이 명확했고 병졸을 잘 돌봤으며 사사 재산을 치지 않아 죽는 날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5 본 「涪陵國人殺都尉反叛芝率軍征討即梟其渠帥百姓安堵」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6 | 기곡에서 조운과 함께 조진군을 막아 군을 보전했다(조운전). 연희 11년 부릉국 반란 우두머리를 베었다(등지전). |
| 무력 | 64 | 무용 기록 없음. 군 지휘 20여 년에 상벌이 분명했다(등지전). |
| 지력 | 73 | 제갈량 사후 손권에게 사자로 가 '천무이일·토무이왕'으로 오촉 연합을 이끌었다(등지전). |
| 정치 | 70 | 부 군 지휘 경력이 있고 청렴해 죽은 날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등지전). |
| 매력 | 64 | 성품이 강직해 선비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나 강유를 기이하게 여겼다(등지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등지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