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21년 — 연도 불명 — 제갈량이 '동유재와 참서한 지 7년'이라 한 말에서 221년경으로 추정(동화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4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제갈량과 부 일을 함께 서명 | 기록 |
| 215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16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17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18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19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20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 221년 | 성도 | 장군중랑장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213년 | 유장·익주 | 우강원장·성도령 → 파동속국도위 → 익주태수(연대 불명) | 불명 |
| 214년 | 촉한 | 장군중랑장 — 제갈량과 부 일을 함께 서명 | 기록 |
| 215~221년 | 촉한 | 장군중랑장 | 추정 |
선주가 촉을 평정하자 불러 장군중랑장으로 삼아 군사장군 제갈량과 좌장군·대사마부 일을 함께 서명하게 한다. 제갈량은 뒤에 '동유재와 7년 참서하며 일마다 열 번씩 되돌려 알려 주었다'고 회고한다.
정사 동화전: 선주가 촉을 평정하자 동화를 불러 장군중랑장으로 삼아 군사장군 제갈량과 함께 좌장군·대사마부의 일을 서명하게 했다. 제갈량은 승상이 되어 '동유재와 7년 참서했는데 일이 미진하면 열 번이라도 되돌려 알려 주었다'며 이를 따르라고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9 본 「先主定蜀徵和為掌軍中郎將與軍師將軍諸葛亮並署左將軍大司馬府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 없음.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71 | 제갈량과 좌장군·대사마부 일을 함께 서명하며 일마다 열 번 되돌려 반박한 사람이라 제갈량이 칭찬했다(동화전). |
| 정치 | 87 | 성도령·익주태수로 검소를 솔선해 사치 풍속을 고쳤고, 죽을 때 집에 한 섬의 재산도 없었다(동화전). |
| 매력 | 68 | 만이 종사로서 성심으로 추대해 남쪽 사람들이 사랑하고 믿었다(동화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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