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19년 — 「죽었다」로만 적혀 연도 없음. 마지막 연도 기록(한중 점)에 맞춘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9년 | 성도 | 유림교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19년 | 촉한 | 유림교위 | 기록 |
유비가 조조와 한중을 다투려 하자 땅은 얻어도 백성은 얻지 못하고 편군을 내면 반드시 불리하다고 말해 모두 맞아 무재로 천거된다.
정사 주군전: 유비가 조조와 한중을 다투려 주군에게 묻자 「그 땅은 얻으나 그 백성은 얻지 못하며 편군을 내면 반드시 불리하니 경계하시라」고 했다. 같은 때 후부사마 장유는 천재가 주군보다 낫다며 한중을 다투면 군이 불리하다고 간했으나 유비가 쓰지 않아 땅은 얻고 백성은 얻지 못했다. 장군 오란·뇌동 등을 무도에 보냈으나 모두 몰살당하니 주군의 말과 같았고 이에 주군이 무재로 천거되었다. 주군은 앞서 유장의 사우종사, 유비가 촉을 평정한 뒤 유림교위였다. 연도는 한중 전투(219)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2 「當得其地,不得其民也」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69 | 유비가 조조와 한중을 다투려 할 때 「땅은 얻어도 백성은 얻지 못하고 편군을 내면 반드시 불리하다」고 점쳐 모두 맞았다(주군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주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