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27년 — 「時年三十七」(263)에서 역산
사망 263년 — 염흥 원년(263) 면죽에서 전사, 37세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61년 | 성도 | 행도호위장군·평상서사 | 기록 |
| 262년 | 성도 | 행도호위장군·평상서사 | 추정 |
| 263년 | 면죽 | 행도호위장군(면죽에서 전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7~242년 | 촉한 | (제갈량의 아들, 직위 없음) | 불명 |
| 243~257년 | 촉한 | 기도위→우림중랑장→사성교위·시중·상서복야·군사장군 | 불명 |
| 258~260년 | 촉한 | 군사장군·상서복야 | 불명 |
| 261년 | 촉한 | 행도호위장군·평상서사 | 기록 |
| 262년 | 촉한 | 행도호위장군·평상서사 | 추정 |
| 263년 | 촉한 | 행도호위장군(면죽에서 전사) | 기록 |
제갈량이 무공에 나오며 형 제갈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8세의 제갈첨이 총명하나 너무 일찍 이룬 듯해 큰 그릇이 못 될까 염려한다.
정사 제갈첨전: 건흥 12년 제갈량이 무공으로 나갈 때 제갈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첨이 이미 8세이고 총명하고 사랑스러우나 일찍 이루어진 듯해 중한 그릇이 못 될까 걱정"이라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5 본 「瞻今已八歲聰慧可愛嫌其早成恐不為重器耳」
17세에 공주를 아내로 맞아 기도위가 된다.
정사 제갈첨전: 17세에 공주를 아내로 맞아 기도위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우림중랑장이 되고 사성교위·시중·상서복야·군사장군까지 올랐다. 연도는 234년 8세에서 17세인 243년으로 계산.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5 본 「年十七尚公主拜騎都尉」
경요 4년 행도호위장군으로 동궐과 함께 상서의 일을 평한다.
정사 제갈첨전: 경요 4년 행도호위장군이 되어 보국대장군 남향후 동궐과 함께 평상서사를 맡았다. 경요 4년은 261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5 본 「為行都護衛將軍與輔國大將軍南鄉侯董厥并平尚書事」
등애가 낭야왕으로 삼겠다며 항복을 권하자 사자를 베고 싸우다 면죽에서 전사한다.
정사 제갈첨전: 등애가 음평으로 들어와 경곡도로 나오자 제갈첨이 군을 이끌고 부에 머물렀다가 전방이 깨지자 물러나 면죽에 머물렀다. 등애가 항복하면 낭야왕으로 삼겠다고 하자 제갈첨이 노해 사자를 베고 싸우다 크게 져 진에서 죽었다. 37세. 아들 제갈상도 함께 죽었다.
연의: 연의 117회 — 연의 117회는 등애가 편지로 유인한 뒤 제갈첨·제갈상 부자가 함께 싸우다 죽는 장면을 길게 적는다.
출전: 三國志 卷35 본 「瞻怒斬艾使遂戰大敗臨陣死時年三十七」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위 정서장군 등애를 막으러 부에서 군을 이끌고 나갔으나 전방이 깨지자 면죽으로 물러나 크게 졌다(제갈첨전). |
| 무력 | 평가 불가 | 서화에 능했으나 무예 기록은 없고 면죽 전투 때 직접 싸우다 죽었다(제갈첨전). |
| 지력 | 50 | 기억력이 뛰어나 촉 사람들이 제갈량을 그리워하며 재능을 아꼈다(제갈첨전). |
| 정치 | 55 | 행도호위장군으로 동궐과 함께 상서의 일을 평했으나 "실제보다 명성이 지나치다"는 평이 있었다(제갈첨전). |
| 매력 | 60 | 등애가 낭야왕으로 삼겠다며 항복을 권하자 사자를 베고 싸웠다(제갈첨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제갈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