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趙雲)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165년경(추정)사망 229년기록 연도 9해

생몰

출생 165년경(추정) — 생년 불명(16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29년 — 건흥 7년(229) — 사망 장소 기록 없음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0년업(원소 영내 유비를 따름, 연대 불명)추정
208년장판(유비 휘하)기록
209년계양편장군·계양태수기록
210년계양계양태수추정
211년공안영사마기록
212년공안영사마추정
214년성도익군장군기록
218년한중익군장군추정
219년한중익군장군기록
221년강주익군장군(강주 주둔)기록
222년백제성익군장군기록
227년한중진동장군기록
228년기곡진동장군 → 진군장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9년기타·재야(상산 출신, 공손찬 휘하·연대 불명)불명
200년촉한(원소 영내 유비를 따름, 연대 불명)추정
201~207년촉한(유비 휘하)불명
208년촉한(유비 휘하)기록
209년촉한편장군·계양태수기록
210년촉한계양태수추정
211년촉한영사마기록
212년촉한영사마추정
213년촉한(입촉 합류)불명
214년촉한익군장군기록
215~217년촉한익군장군불명
218년촉한익군장군추정
219년촉한익군장군기록
220년촉한익군장군불명
221년촉한익군장군(강주 주둔)기록
222년촉한익군장군기록
223~226년촉한중호군·정남장군불명
227년촉한진동장군기록
228년촉한진동장군 → 진군장군기록
229년촉한진군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08년 · (유비 휘하)

아두를 안고 감부인을 지켜 적진을 빠져나온다.

정사 선주전: 조조가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아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운전: 조운이 어린 아들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냈다. 장비전에도 장판교에서 버틴 기록이 있다.

연의: 연의 41~42회 — 연의 41~42회는 장비의 장판교 대치를 크게 부풀린다.

관련: 장판 전투와 조운의 아두 구출 · 장판 전투

209년 · 편장군·계양태수 · 승진

계양태수 조범이 항복하자 편장군·계양태수가 된다. 조범이 형수 번씨와의 혼담을 권했으나 사양했다(배송지 주 ― 雲別傳).

정사 배송지 주 ― 雲別傳: 강남을 평정할 때 편장군이 되어 계양태수를 맡았고, 조범이 과부 형수 번씨를 아내로 주려 했으나 조운이 사양했다.

연의: 연의 52회 — 연의 52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36 주(雲別傳) 「以為偏將軍領桂陽太守代趙範」

214년 · 익군장군 · 승진

익주 평정 뒤 익군장군에 오른다.

정사 선주전 건안 19년: 5월 성도를 포위한 지 수십 일 만에 유장이 항복했다.

연의: 연의 65회 — 연의 65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관련: 유비, 익주를 얻다

219년 · 익군장군 · 대승

한수 가에서 소수로 조조군을 막는다. 근거는 배송지 주 조운별전.

정사 선주전·황충전: 건안 24년 정월 정군산에서 하후연이 죽었다. 조운의 한수 공방은 본전이 아닌 배송지 주 운별전에 있다.

연의: 연의 70~71회 — 연의 70~71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정군산 전투와 한수 공방

221년 · 익군장군(강주 주둔)

손권의 형주 기습에 분노한 선주가 오를 치려 하자, 먼저 위를 쳐야 한다고 간한다(배송지 주 ― 雲別傳).

정사 배송지 주 ― 雲別傳: 조운이 '국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다'라며 먼저 위를 칠 것을 간했다.

연의: 연의 81회 — 연의 81회가 같은 간언을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36 주(雲別傳) 「國賊是曹操非孫權也」

227년 · 진동장군

한중 주둔군으로 북벌 준비에 참여한다.

정사 제갈량전: 전출사표가 본문에 실려 있다. 후출사표는 본문에 없고 배송지 주 한진춘추에만 있다(진위 논란).

연의: 연의 91~92회 — 연의 91~92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관련: 출사표

228년 · 진동장군 → 진군장군 · 강등

기곡 양동에서 패했으나 군을 수습해 물러나고 진군장군으로 강등된다.

정사 조운전: 기곡에서 조진의 대군에 패했으나 군을 수습해 물러났고 진군장군으로 강등됐다. 군수 물자를 남겨 겨울옷으로 쓰자 한 일화는 배송지 주 운별전이다.

연의: 연의 95회 — 연의 95회가 같은 장면을 다룬다.

관련: 기곡 양동과 조운의 퇴각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2년 · 계교 전투

정사 공손찬전: 공손찬이 반하에 주둔하며 원소를 치려 했고, 청주·서주 황건을 깨고 계교까지 진군했다. 원소의 군이 국의를 선봉으로 세워 공손찬과 싸워 엄강을 사로잡았고 공손찬군은 패주했다. 연의 7회는 국의 궁수 8백과 보병 1만 5천, 조운의 첫 출전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7회

199년 · 역경 전투

정사 공손찬전: 공손찬은 원소에게 거듭 패해 역경으로 물러나 십중 참호를 파고 높이 5~6장 성루 위에 열 장짜리 중앙 누를 지어 곡식 300만 곡을 쌓고 버텼다. 아들이 장연의 구원군과 불을 올려 신호하기로 했으나 원소가 이를 가로채 같은 불을 놓아 공손찬을 끌어내 쳤다. 원소는 땅굴을 파 누를 무너뜨리며 중앙 누까지 이르렀고, 공손찬은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연의: 연의 21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5한수에서 소수로 조조군을 막고 기곡에서 패하고도 군수를 보존했다(배송지 주 ― 雲別傳, 조운전).
무력96장판에서 아두를 안고 감부인을 지켜 적진을 빠져나왔다(208, 조운전).
지력76손권의 형주 기습에 격분한 선주에게 '국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다'라며 간했다(배송지 주 ― 雲別傳).
정치67익주 평정 뒤 전택 분배에 반대해 백성에게 돌려주자 했다(배송지 주 ― 雲別傳).
매력85선주가 '자룡은 온몸이 담(膽)'이라 칭찬했다(배송지 주 ― 雲別傳).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운의 이동 경로

촉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