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27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명제 즉위 후 졸. 마지막 기록 연도(227)까지 칸을 둠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1년 | 기타·재야 | (임성 출신·연대 불명) | 불명 |
| 192~208년 | 위 | 종사→양분교위→태산태수 | 불명 |
| 209~219년 | 위 | 태산태수·기도위 | 불명 |
| 220~226년 | 위 | 비장군→서주자사 | 불명 |
| 227년 | 위 | 서주자사 | 불명 |
양분교위를 맡아 염모 등 반란 두목 수십 명을 술자리에서 매복해 처단한다.
정사 여건전: 양분교위 두송 관할의 염모 등이 창희와 통해 난을 일으키자 조조는 여건에게 교위를 대신 맡게 했고, 여건은 두목 수십 명에게 술자리를 베푼 뒤 매복한 장사로 모두 쳐 죽여 나머지 무리를 어루만져 평정했다.
연의: 연의 18회
출전: 三國志 卷18 「虔察炅母等皆醉使伏兵盡格殺之」
태산군에서 곽조·공손독 등 산채 도적을 은혜와 신의로 항복시키고 정예병을 만든다.
정사 여건전: 원소가 둔 중랑장 곽조·공손독 등 수십 무리가 산에서 약탈하자 여건이 가병을 이끌고 군에 가 은신으로 대하자 곽조 등이 항복하고 산중에 숨은 이들이 나왔으며, 강한 자를 뽑아 전사로 삼아 태산이 정병으로 이름났다.
연의: 연의 10회
출전: 三國志 卷18 「虔將家兵到郡開恩信祖等黨屬皆降服」 / 三國志 卷18 「泰山由是遂有精兵冠名州郡」
문제 즉위 후 서주자사가 되어 왕상을 별가로 삼아 정사를 맡기고 이성의 반란을 토벌한다.
정사 여건전: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여건은 비장군·익수정후 서주자사에 올랐고 낭야 왕상을 별가로 불러 민사를 맡겼으며 이성 반란군을 쳐 공을 세웠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請琅邪王祥為別駕民事一以委之世多其能任賢」
정사 무제기: 195년 봄 조조가 정도를 습격했고,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이봉이 거야에 주둔하자 조조가 공격했다. 여포가 구원했으나 설란이 패해 여포는 달아났고, 조조는 설란 등을 벴다. 여포가 동민에서 진궁과 1만여 명을 이끌고 다시 오자 조조는 병력이 적어 매복을 두고 기병을 풀어 크게 이겼다. 여포는 밤에 달아났고 조조가 정도를 다시 얻으니 여포는 동쪽 유비에게로 갔다.
연의: 연의 1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6 | 태산군에서 산적 곽조·공손독 등 수십 무리를 항복시키고 정예병을 만들어 십수 년 다스렸다(여건전). |
| 무력 | 66 | 염모 등 반란 두목 수십 명을 술자리에서 매복으로 일격에 처단했다(여건전). |
| 지력 | 65 | 지력은 "담략"과 "은신"을 읽어 반란 세력을 가려낸 데서 드러난다(여건전). |
| 정치 | 70 | 인과 신으로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아 산업에 돌아가게 하고 서주자사로 있으며 왕상을 별가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여건전). |
| 매력 | 70 | 조조가 "탐욕스러운 악을 붙잡고 포악한 무리를 쳐 백성이 편안해졌다"고 칭찬했다(여건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여건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