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19년 — 건안 24년(219) 8월 — 번성에서 관우에게 처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5년 | 평양 | 교위(마등 휘하) | 추정 |
| 214년 | 기성 | (마초 따라 한중 장로 귀의) | 기록 |
| 216년 | 한중 | 입의장군 | 추정 |
| 218년 | 번성 | 입의장군(번 주둔) | 추정 |
| 219년 | 번성 | 입의장군(번 주둔)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9년 | 기타·재야 | 군리·주종사(양주) | 불명 |
| 190~204년 | 기타·재야 | 교위(마등 휘하) | 불명 |
| 205년 | 기타·재야 | 교위(마등 휘하) | 추정 |
| 206~213년 | 기타·재야 | 중랑장(마초 휘하) | 불명 |
| 214년 | 기타·재야 | (마초 따라 한중 장로 귀의) | 기록 |
| 215년 | 기타·재야 | (마초 따라 한중 장로 귀의) | 불명 |
| 216년 | 위 | 입의장군 | 추정 |
| 217년 | 위 | 입의장군 | 불명 |
| 218년 | 위 | 입의장군(번 주둔) | 추정 |
| 219년 | 위 | 입의장군(번 주둔) | 기록 |
평양에서 곽원·고간을 깨고 곽원을 직접 베어 중랑장이 된다.
정사 방덕전: 원담이 보낸 곽원·고간이 하동을 공략하자 종요가 관중 제장을 이끌고 토벌했고, 방덕은 마초 휘하로 평양에서 곽원·고간을 막아 선봉이 되어 곽원을 직접 베었다.
연의: 연의 79회
출전: 三國志 卷18 「德隨騰子超拒援幹於平陽德為軍鋒進攻援幹大破之親斬援首」
위남에서 마초가 패하자 한양으로 달아나 기성을 지키고 이후 한중으로 간다.
정사 방덕전: 조조가 위남에서 마초를 깨자 방덕은 마초를 따라 한양으로 가 기성을 지켰고 이후 마초와 한중으로 가 장로를 따랐다.
연의: 연의 59회
출전: 三國志 卷18 「太祖破超於渭南德隨超亡入漢陽保冀城」 / 三國志 卷18 「後復隨超奔漢中從張魯」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항복해 입의장군이 된다.
정사 방덕전: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방덕은 무리와 함께 항복했고, 조조는 방덕의 용맹을 듣고 있어 입의장군에 임명하고 관문정후에 봉해 3백 호를 주었다.
연의: 연의 59회
출전: 三國志 卷18 「太祖定漢中德隨眾降」 / 三國志 卷18 「拜立義將軍封關門亭侯」
번성에서 관우의 이마를 쏘아 맞히고, 한수 범람 후 끝까지 싸우다 사로잡혀 항복을 거부하고 죽는다.
정사 방덕전: 방덕은 관우와 직접 교전해 이마를 맞췄으나, 한수가 범람해 번성 아래가 물에 잠기자 제방에 올라 싸우다 화살이 떨어져 단병접전을 했고, 배가 뒤집혀 관우에게 사로잡혀서도 서서 꿇지 않고 "차라리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장은 되지 않겠다"며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射羽中額」 / 三國志 卷18 「我寧為國家鬼不為賊將也」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번성에서 관우와 맞서 화살로 이마를 맞추고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았다(방덕전). |
| 무력 | 90 | 말이 흰 말이라 "백마장군"으로 불리며 관우군에 두려움을 줬고 화살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방덕전). |
| 지력 | 58 | 평양에서 곽원·고간을 깨고 곽원을 직접 베었다(방덕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업적 기록은 없다. |
| 매력 | 50 | "차라리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장은 되지 않겠다"며 관우의 회유를 끝까지 거절했다(방덕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방덕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