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1년 — 건안 22년(217) 졸 향년 47세로 역산
사망 217년 — 건안 22년 조조의 오 정벌 중 거소(居巢)에서 역병으로 병사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0년 | 낙양 | (하내 온에서 고향 사람을 설득)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9년 | 기타·재야 | (하내 온 출신, 사마의의 형) | 불명 |
| 190년 | 위 | (하내 온에서 고향 사람을 설득) | 기록 |
| 191~192년 | 위 | (하내 온에서 고향 사람을 설득) | 불명 |
| 193~216년 | 위 | 사공연속·성고령 | 불명 |
| 217년 | 위 | 연주자사 | 불명 |
동탁이 낙양에서 천도하며 아버지 치서어사 사마방을 서쪽으로 이주시키려 할 때 도망하려 했다고 고발되어 끌려가자, 동탁의 시대를 논해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정사 사마랑전: 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낙양에 남았을 때 아버지 사마방이 서쪽으로 이주해야 했는데 난리라 사마랑이 가족을 데리고 본현으로 돌아가려 했다. 도망한다고 고발되어 동탁 앞에 끌려가자 동탁이 「자네와 내 죽은 아들이 동갑이라 하마터면 큰 잘못을 할 뻔했다」고 했고, 사마랑은 병란이 계속되는 때 명공이 숙연히 삼가야 한다고 말해 동탁이 「나도 깨달았다」고 했다. 연도는 동탁의 천도(초평 원년, 190).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卿與吾亡兒同歲,幾大相負」
22세에 조조의 사공연속이 되어 성고령, 당양장을 거쳐 원성령·승상주부가 된다.
정사 사마랑전: 22세에 태조가 사공연속으로 불러 성고령에 임명했으나 병으로 떠났고 다시 당양장이 되었다. 정치는 관대·은혜에 힘쓰고 매질을 쓰지 않았으며 원성령을 거쳐 승상주부가 되었다. 주와 군이 병사를 거느리게 하고 정전제를 회복하자는 의견을 냈고, 연주자사가 되어 정치와 교화가 크게 행해졌다. 연도는 출생 역산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年二十二,太祖辟爲司空掾屬」
건안 22년 하후돈·장패와 함께 오를 치러 거소에 이르러 군사들이 대역에 걸리자 직접 돌며 의약을 대다가 병에 걸려 47세로 죽는다.
정사 사마랑전: 건안 22년 하후돈·장패 등과 오를 정벌하다 거소에 이르러 군사들이 대역에 걸리자 사마랑이 직접 돌아보며 의약을 보냈다. 병을 얻어 47세로 죽었고 유언으로 포의와 복건·평상복으로 염하게 했다. 주 사람들이 그리워했다. 아우 사마부의 아들 사마망이 뒤를 이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遇疾卒,時年四十七」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6 | 건안 22년 거소에서 군사들이 역병에 걸리자 직접 돌며 의약을 대다 병으로 죽었다(사마랑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75 | 동탁이 천도할 때 동탁의 아들 나이를 말하며 그 앞에서 시세를 논해 풀려났다(사마랑전). |
| 정치 | 80 | 연주자사로 정치가 크게 행해졌고 주와 군에 병사를 두고 정전제를 회복하자는 주장을 냈다(사마랑전). |
| 매력 | 72 | 당양장으로 매질 없이 너그럽게 다스려 백성이 법을 어기지 않았고 흉년에는 종족을 거두어 가르쳤다(사마랑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사마랑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