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지(司馬芝)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75년경(추정)사망 239년기록 연도 11해

생몰

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9년 — 사망 연도 불명 — 대사농 재직 중 졸(사마지전). 명제 때(239년경 상한)로 추정. 계산용 가정값.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3년낙양하남윤기록
224년낙양하남윤기록
225년낙양하남윤기록
226년낙양하남윤 — 조홍 유모 사건 처결기록
227년낙양하남윤 — 조홍 유모 사건 처결기록
228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29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30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31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32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33년낙양하남윤 → 면관추정
234년낙양대사농기록
235년낙양대사농기록
236년낙양대사농기록
237년낙양대사농기록
238년낙양대사농기록
239년낙양대사농 — 재직 중 졸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90~207년기타·재야(형주로 피난, 남방에서 십수 년 경작)불명
208~209년위관장(조조 형주 평정 뒤)불명
210~215년위광평령 → 대리정불명
216~222년위감릉·패·양평태수불명
223~225년위하남윤기록
226~227년위하남윤 — 조홍 유모 사건 처결기록
228~233년위하남윤 → 면관추정
234~238년위대사농기록
239년위대사농 — 재직 중 졸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관장(조조 형주 평정 뒤) · 법집행

관장으로 군 주부 유절의 빈객 천여 가가 부역을 피하고 도적질한다는 것을 알고 왕동 등을 병사로 뽑자 유절이 숨기며 군흥(軍興)을 구실로 현을 압박한다. 사마지가 제남에 격문을 보내 유절의 죄를 갖추어 아뢰자 태수 학광이 유절을 대신 복무시켜 청주에서 '군 주부로 병사 된 이'라 불렸다. 연도는 조조의 형주 평정 직후(209년경)로 추정.

정사 사마지전: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고 사마지를 관장으로 삼았다. 이때 천하가 처음 정돈되어 법을 받드는 이가 적었다. 군 주부 유절은 오랜 가문의 호협으로 빈객이 천여 가라 밖으로는 도적이 되고 안으로는 관리를 어지럽혔다. 사마지가 유절의 빈객 왕동 등을 병사로 뽑자 유절이 숨기고 독우를 시켜 군흥을 구실로 현을 압박했다. 사마지가 제남에 격문을 띄워 유절의 죄를 갖추어 말하자 태수 학광이 평소 사마지를 믿어 곧 유절을 대신 가게 했다. 청주 사람들은 사마지를 '군 주부를 병사로 삼은 이'라 불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芝乃馳檄濟南具陳節罪太守郝光素敬信芝即以節代同行青州號芝以郡主簿爲兵」

224년 · 하남윤 · 치적

황초 중 하남윤이 되어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왔으며 사사로운 청탁이 통하지 않았다. 내관이 처의 큰아버지 동소를 통해 청탁하려 해도 동소가 말을 전하지 못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황초 중(224년경)으로 추정.

정사 사마지전: 황초 중 입조해 하남윤이 되어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왔고 사사로운 청탁이 통하지 않았다. 마침 내관이 일로 사마지에게 청탁하려 했으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해 사마지 아내의 큰아버지 동소를 통했는데, 동소도 사마지를 꺼려 전해 주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黄初中入爲河南尹抑强扶弱私请不行」

227년 · 하남윤 — 조홍 유모 사건 처결 · 처결

특진 조홍의 유모 당이 임분공주 시녀와 함께 요망한 일로 투옥되자 변태후가 황문을 보내 사마지에게 전하게 해도 통하지 않고 낙양 옥에 명해 심문 끝에 죽이고 상소한다. 명제가 손수 답해 '권한을 쓴 것이 옳다, 뒤에 황문이 다시 가도 통하게 하지 마라'고 한다. 명제 즉위 직후(227년경)로 추정.

정사 사마지전: 명제가 즉위하자 관내후를 내렸다. 얼마 뒤 특진 조홍의 유모 당이 임분공주 시녀와 신령에게 제사하는 일로 하옥되었다. 변태후가 황문을 사마지의 관청에 보내 명을 전했으나 사마지는 통하지 않고 곧 낙양 옥에 명해 고문 끝에 죽이고 상소했다. 황제가 손수 답해 '표를 보고 경이 조서를 받들려는 지극한 마음을 알았다. 권한으로 일을 행한 것이 옳다. 뒤에 황문이 다시 가도 통하게 하지 마라'고 했다. 사마지는 11년간 재직하며 자주 맞지 않는 규조를 논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卞太后遣黄門诣府傳令芝不通輒敕洛陽獄考竟而上疏曰」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 지휘 기록 없음.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
지력69형옥은 '혹독함에서 실수가 생긴다'며 의심스러운 것을 용서하는 쪽으로 가르쳤고 조조가 따랐다(사마지전).
정치80하남윤으로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 사사로운 청탁이 통하지 않았다. 농업 중심의 둔전 정책을 상주했다(사마지전).
매력70효성으로 산적도 해치지 못했고, 청렴하게 죽어 '위부터 지금까지 하남윤 중 사마지에 미칠 자 없다'는 평을 받았다(사마지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사마지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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