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총(滿寵)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75년경(추정)사망 242년기록 연도 18해

생몰

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42년 — 정시 3년(242) 졸, 시호 경후(景侯)(만총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96년허창서조속 → 허령추정
197년허창서조속 → 허령기록
198년허창서조속 → 허령추정
199년허창서조속 → 허령추정
200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1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기록
202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3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4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5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6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7년여남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9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0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1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2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3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4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5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6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7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8년여남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9년번성번성에서 조인을 도와 관우를 막음 — 안창정후기록
222년신야복파장군 — 신야 주둔, 가절월기록
223년신야복파장군 — 신야 주둔, 가절월기록
229년합비양주 제군 도독(조휴 사후)기록
230년합비정동장군 — 합비 방어기록
231년합비정동장군 — 합비 방어기록
232년합비정동장군 — 합비 방어기록
233년합비정동장군 — 합비 신성 방어기록
235년합비정동장군기록
236년합비정동장군기록
237년합비정동장군기록
238년낙양태위(경초 2년 징환)기록
239년낙양태위기록
240년낙양태위기록
241년낙양태위기록
242년낙양태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1년기타·재야(산양 창읍 출신) 군 독우·고평령 — 연도 불명불명
192~195년위연주 종사 — 조조의 연주 부임 때 초빙불명
196년위서조속 → 허령추정
197년위서조속 → 허령기록
198~199년위서조속 → 허령추정
200년위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1년위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기록
202~207년위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추정
208년위행분위장군 — 당양 주둔불명
209~218년위여남태수·관내후추정
219년위번성에서 조인을 도와 관우를 막음 — 안창정후기록
220~221년위양무장군(위왕 문제 즉위)불명
222~223년위복파장군 — 신야 주둔, 가절월기록
224년위전장군 — 정호에서 오군 야습을 막음불명
225~227년위전장군불명
228년위예주자사 겸임불명
229년위양주 제군 도독(조휴 사후)기록
230~232년위정동장군 — 합비 방어기록
233년위정동장군 — 합비 신성 방어기록
234년위정동장군 — 합비 신성 방어불명
235~237년위정동장군기록
238년위태위(경초 2년 징환)기록
239~242년위태위기록

나온 사건·전투

197년 · 서조속 → 허령 · 청송

허령으로 조홍의 빈객이 법을 어기자 조홍의 서신과 조조의 소환에도 그를 서둘러 처형하고, 양표를 옥에 가두어 순욱·공융까지 부탁했으나 법대로 국문한 뒤 조조에게 '죄가 밝지 않으면 민망을 크게 잃는다'고 간해 양표를 석방시킨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허도 시기(197)로 둠(추정).

정사 만총전: 조홍의 빈객이 허현 경내에서 자주 법을 어겨 만총이 잡아 다스렸다. 조홍이 서신을 보내도 듣지 않았고 조조가 허의 담당자를 불렀을 때 만총은 용서하려는 줄 알고 서둘러 그를 죽였다. 태위였던 양표가 현 옥에 갇히자 순욱·공융이 모두 부탁했으나 만총은 아무 답 없이 법대로 국문했고, 며칠 뒤 조조를 뵙고 '양표에게 다른 진술이 없습니다. 죽일 자는 먼저 죄를 밝혀야 하며 이 사람은 해내에 이름이 있어 죄가 밝지 않으면 반드시 민망을 크게 잃으니 공을 위해 애석합니다'라고 했다. 조조가 그날로 양표를 석방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楊彪考訊無他辭語當殺者宜先彰其罪」

201년 · 여남태수 — 원소 문객 거점 평정 · 평정

원소의 본군인 여남에 문객들이 병력을 끼고 현마다 버티자 조조가 만총을 여남태수로 삼는다. 따르겠다는 이 500명을 모아 20여 보루를 치고 항복 않은 우두머리 10여 명을 연회 자리에서 죽여 한때에 평정해 2만 호와 병 2천을 얻는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관도 시기 전후(201)로 둠(추정).

정사 만총전: 이때 원소가 하삭에서 번성했고 여남은 원소의 본군이어서 문생·빈객이 여러 현에 퍼져 병력을 끼고 버텼다. 조조가 근심해 만총을 여남태수로 삼았다. 만총은 따르는 자 500명을 모아 이끌고 20여 보루를 쳐 내려갔고 아직 항복하지 않은 우두머리들을 꾀어 자리에서 10여 명을 죽여 한꺼번에 모두 평정했다. 2만 호와 병 2천을 얻어 농사를 짓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寵募其服從者五百人率攻下二十餘壁誘其未降渠帥於坐上殺十餘人一時皆平」

219년 · 번성에서 조인을 도와 관우를 막음 — 안창정후 · 수성

관우가 번성을 에워싸고 우금의 군이 장마 물에 잠겨 번성도 무너지자 누가 야간 도주를 권하지만 만총은 '산 물은 곧 빠질 것이고 지금 달아나면 황하 이남이 나라의 것이 아니게 된다'며 조인을 붙들고 백마를 가라앉혀 군사와 맹세한다. 서황 등이 구원해 오자 힘껏 싸워 관우를 물러나게 한다.

정사 만총전: 관우가 양양을 에워싸자 만총이 정남장군 조인을 도와 번성에 주둔했고 좌장군 우금 등의 군은 장마로 물이 불어 관우에게 잠겼다. 관우가 번성을 급히 공격해 물이 들어 성이 곳곳이 무너져 모두 낯빛을 잃었다. 누가 조인에게 '배를 타고 밤에 달아나라'고 했으나 만총이 '산 물은 빠르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달아나면 황하 이남은 다시 나라의 것이 아니다. 그대는 기다리라'고 해 조인이 따랐다. 만총이 백마를 가라앉혀 군인들과 맹세했고 서황 등이 구원해 오자 만총이 힘껏 싸워 공이 있어 관우가 물러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寵乃沈白馬與軍人盟誓會徐晃等救至寵力戰有功羽遂退」

224년 · 전장군 — 정호에서 오군 야습을 막음 · 방어

대군이 남정해 정호에서 오군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자 만총이 '오늘 밤 바람이 몹시 세니 적이 반드시 불을 지르러 올 것이니 대비하라'고 장수들에게 이르고, 한밤에 과연 10부대가 불을 지르러 오자 매복으로 기습해 깨뜨려 남향후로 오른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황초 5년(224) 남정 시기로 둠(추정).

정사 만총전: 대군이 남정해 정호에 이르렀을 때 만총이 여러 군을 이끌고 앞에서 적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만총이 장수들에게 '오늘 밤 바람이 몹시 사나워 적이 반드시 불을 지르러 올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지시해 모든 군이 경계했다. 한밤에 적이 과연 10부대를 보내 밤에 몰래 불을 지르러 오자 만총이 기습해 깨뜨렸고 남향후로 봉작이 올랐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今夕風甚猛賊必來燒軍宜爲其備」

229년 · 양주 제군 도독(조휴 사후) · 경고

오가 대규모 훈련을 가장해 서양을 노린다고 소문내자 만총이 그 뜻을 읽고 대비해 손권을 물러가게 한다. 가을에 조휴가 여강에서 합비로, 만총은 하구 방면으로 나아가게 되자 '조휴는 용맹하나 용병이 드물고 가는 길이 호수를 등지고 강을 곁에 둬 진군은 쉽고 퇴각은 어렵다'고 상소했으나 답이 오기 전에 조휴가 깊이 들어가 적에게 퇴로를 끊긴다. 본문은 태화 3년으로 적었다.

정사 만총전: 태화 3년 봄 항복한 이가 오가 크게 경계한다고 하며 강북에서 사냥하러 오겠다고 소리친다 했고 손권이 직접 나오려 했다. 만총이 반드시 서양을 습격하리라 헤아려 대비하니 손권이 듣고 물러났다. 가을에 조휴를 여강에서 남으로 합비에 들게 하고 만총은 하구로 향하게 했다. 만총이 상소해 '조휴는 밝고 과감하나 용병이 드물고 지금 가는 길은 호수를 등지고 강을 곁에 둔 곳이라 진군은 쉽고 물러나기는 어려워 병가의 웅덩이다. 무강구로 들어가면 깊이 대비해야 한다'고 했으나 표가 답을 받기 전에 조휴가 깊이 들어갔다. 적이 무강구에서 협석을 끊고 조휴의 돌아오는 길을 막자 조휴는 싸움이 불리해 물러났고 주령 등이 뒤에서 길을 끊은 적과 마주쳐 조휴의 군이 돌아올 수 있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曹休雖明果而希用兵今所從道背湖旁江易進難退此兵之窪地也」

230년 · 정동장군 — 합비 방어 · 방어

손권이 합비로 오겠다 소리쳐 연주·예주의 군이 모이자 곧 물러났으나 만총은 '큰 군을 일으켰다 돌아간 것은 본의가 아니다. 거짓으로 물러나 우리 군을 파하게 하고 빈틈을 칠 것이다'라며 파병하지 않는다. 십여 일 뒤 손권이 합비성까지 왔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간다. 본문은 태화 4년(230).

정사 만총전: 태화 4년 겨울 손권이 합비에 이르겠다고 소리치자 만총이 표를 올려 연주·예주의 군을 불러 모두 모였다. 적이 곧 물러나 조서로 군을 파하게 했다. 만총은 지금 적이 대거 일어났다 돌아간 것은 본의가 아니니 반드시 거짓 퇴각으로 우리 군을 파하게 하고 돌아와 대비 없는 틈을 칠 것이라 보아 표를 올려 군을 파하지 않았다. 십여 일 뒤 손권이 과연 다시 와 합비성에 이르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此必欲僞退以罷吾兵而倒還乘虛掩不備也表不罷兵」

233년 · 정동장군 — 합비 신성 방어 · 전략

합비성이 남으로 강호에 임하고 북으로 수춘에서 멀어 적이 물을 끼고 에워싸기 쉽다며 서쪽 30리 험지에 새 성을 쌓는 이성(移城)을 상주한다. 호군장군 장제는 약함을 보이는 일이라 반대했으나 만총이 『손자』의 '병자궤도야'를 들어 거듭 상주하자 조서가 허락한다.

정사 만총전: 청룡 원년 만총이 상소해 '합비성은 남으로 강호에 임하고 북으로 수춘에서 멀어 적이 에워싸면 물을 끼고 세를 이룬다. 관병이 구하려면 먼저 적의 큰 무리를 깨야 포위가 풀린다. 적이 오기는 쉽고 구원 가기는 어려우니 성안의 병을 옮겨 서쪽 30리의 기험한 곳에 새로 성을 세우고 지키면 적을 평지로 끌어들여 돌아가는 길을 잡을 수 있어 계책상 편하다'고 했다. 호군장군 장제는 천하에 약함을 보이는 일이라 반대했고 황제가 허락하지 않았으나 만총이 거듭 표를 올려 '병자궤도야'를 들어 형이유지(形而誘之)를 말하자 상서 조자가 만총의 계책이 낫다 하여 조서가 마침내 허락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合肥城南臨江湖北遠壽春賊攻圍之得據水爲勢官兵救之當先破賊大輩然後圍乃得解」

234년 · 정동장군 — 합비 신성 방어 · 승리

손권이 10만이라 일컬으며 합비 신성에 이르자 만총이 달려가 장사 수십 명을 모아 소나무를 꺾어 횃불을 만들고 삼기름을 부어 바람 위쪽에서 불을 놓아 적의 공성구를 태우고 손권의 아우 손씨의 아들 손태를 사살해 적이 물러난다. 연도는 본문의 「明年」(청룡 2년, 234)을 따랐다.

정사 만총전: 이듬해 손권이 직접 거느려 10만이라 일컫고 합비 신성에 이르렀다. 만총이 달려가 구원하며 장사 수십 명을 모집해 소나무를 꺾어 횃불을 만들고 삼기름을 부어 위쪽 바람에 불을 놓아 적의 공성구를 태우고 손권 동생의 아들 손태를 쏘아 죽였다. 적이 이에 물러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寵馳往赴募壯士數十人折松爲炬灌以麻油從上風放火燒賊攻具射殺權弟子孫泰」

238년 · 태위(경초 2년 징환) · 표창

나이가 많다 하여 불려 와 태위가 된다. 재산을 일구지 않아 집에 남은 재물이 없자 조서가 '전(典兵)을 밖에서 맡아 오직 공을 걱정했다'며 밭 10경·곡식 500곡·돈 20만을 내려 청충검약을 표창한다.

정사 만총전: 경초 2년 만총이 늙었다 하여 불러들여 태위로 삼았다. 만총은 산업을 다스리지 않아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조서가 '그대는 병권을 밖에서 맡아 마음을 다해 공을 근심하니 행보·제준의 풍이 있다. 밭 10경, 곡식 500곡, 돈 20만을 내려 청충검약의 절개를 밝힌다'고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본 「寵不治產業家無餘財」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2합비·양주 방면 도독으로 손권의 거듭된 공세를 막았고, 번성에서는 물이 불어난 관우의 압박 속에서 조인을 붙들어 앉혔다(만총전).
무력50근접전 기록은 적다. 합비 신성에서 장사(壯士)를 모아 횃불로 적의 공성구를 태웠다(만총전).
지력80손권의 거짓 후퇴와 투항 요청, 조휴의 진군로를 앞서 읽어 대비를 상주했다(만총전).
정치76여남 군벌 평정 뒤 호구 2만과 병 2천을 얻어 둔전에 돌렸고, 집에 남은 재산이 없어 명제가 청충검약을 표창했다(만총전).
매력66양표 사건에서 '죄가 밝지 않으면 민망을 잃는다'고 조조를 설득했고, 조홍의 청탁을 듣지 않았다(만총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만총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