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44년 — 정시 5년(244) 사망, 태상 추증·시호 정후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07년 | 유표 | (하동 문희 출신, 형주로 피난·유표 빈례) | 불명 |
| 208~213년 | 위 | 참승상군사→삼현령→창조속 | 불명 |
| 214~217년 | 위 | 대군태수(3년) | 불명 |
| 218~219년 | 위 | 승상이조연→패국상→연주자사 | 불명 |
| 220~226년 | 위 | 산기상시→위군·영천 전농중랑장→형주자사 | 불명 |
| 227~243년 | 위 | 상서→하남윤→태위군사→대사농→상서령→광록대부 | 불명 |
| 244년 | 위 | (광록대부, 사망) | 불명 |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참승상군사가 되어 세 현령을 거쳐 창조속이 된다.
정사 배잠전: 형주로 피난해 유표에게 빈례를 받았으나 왕찬·사마지에게 유표가 패왕의 재목이 아니라 하고 장사로 갔다.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참승상군사가 되고 세 현령을 거쳐 창조속이 되었다. 형주 평정은 208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太祖定荊州以潛參丞相軍事出歷三縣令入爲倉曹屬」
오환 선우 셋이 군사를 장악한 대군에 병력 없이 단신으로 부임해 선우들이 약탈했던 물자와 부녀를 돌려주게 한다.
정사 배잠전: 대군이 크게 어지러워 배잠을 태수로 삼았다. 오환왕 등 세 선우가 군사를 멋대로 했는데 조조가 정병을 주려 하자 배잠이 "병력으로 누르면 반발하니 계책으로 도모해야 한다"며 수레 한 대로 군에 가 선우를 놀라게 하고 기뻐하게 했다. 선우 이하가 모자를 벗고 이마를 조아려 약탈한 부녀와 물자를 모두 돌려주었다. 대군에 3년 있었다고만 적혀 있어 215년경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遂單車之郡單于驚喜潛撫之以靜」
너무 일찍 돌려보낸 것을 후회하던 조조에게 몇십 일 뒤 선우 셋이 반란했다는 소식이 이르러 조창이 정벌에 나선다.
정사 배잠전: 조조가 대군의 치적을 칭찬하자 배잠이 "제호에게는 엄했으니 과한 관대는 다시 반란을 부른다"며 "대는 다시 반란할 것"이라 했다. 조조가 배잠을 너무 일찍 돌린 것을 깊이 후회했고 몇십 일 뒤 세 선우의 반란 소식이 오자 언릉후 조창이 효기장군으로 정벌했다. 조창의 대군 정벌은 건안 23년(218).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後數十日三單于反問至乃遣鄢陵侯彰爲驍騎將軍征之」
정시 5년에 죽어 태상이 추증되고 정후라 시호하며 검소한 장례를 유언한다.
정사 배잠전: 정시 5년(244) 사망, 태상을 추증하고 시호는 정후. 아들 배수가 이었다. 검소한 장례를 유언해 묘에는 자리 하나와 질그릇 몇 개만 두고 나머지는 두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追贈太常諡曰貞侯子秀嗣」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5 | 대군태수로 병력 없이 단신 부임해 오환 선우를 달래 복종시켰다(배잠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배잠전). |
| 지력 | 73 | 병력으로 누르지 말고 계책으로 도모하라고 조조의 병력 지원을 사양했고 대군의 재반란을 미리 예측했다(배잠전). |
| 정치 | 78 | 상서령으로서 직분과 명실을 바로 하고 관부 일을 150여 조로 정리했다(배잠전). |
| 매력 | 68 | 검소한 장례를 유언해 묘에 자리 하나와 질그릇 몇 개만 두었다(배잠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배잠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