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패국 출신)
사망 200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후에 중령군) — 이 파일은 마지막 기록 연도(200)까지만 칸을 둠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9년 | 사견 | (조조 휘하 장수) | 추정 |
| 200년 | 관도 | (조조 휘하 장수)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7~198년 | 위 | (조조 휘하 장수) | 불명 |
| 199년 | 위 | (조조 휘하 장수) | 추정 |
| 200년 | 위 | (조조 휘하 장수) | 기록 |
하수 건너 사견의 미고를 치는 조인과 함께 도하해 미고를 베고 사견을 항복시킨다.
정사 무제기: 건안 4년 4월 조조가 하수에 임해 사환과 조인을 건너가 미고를 치게 했고 견성에서 미고를 크게 깨 베었으며, 조조가 하수를 건너 사견을 포위하자 설홍·유상이 항복했다.
연의: 연의 19회
출전: 三國志 卷01 「使史渙曹仁渡河擊之」
관도에서 순유의 계책으로 서황과 원소의 운송 수레 수천 승을 쳐서 모두 불태운다.
정사 무제기: 원소의 곡물 수레 수천 승이 오자 조조가 순유의 계책을 써 서황·사환을 보내 요격해 크게 깨고 수레를 모두 불태웠다.
연의: 연의 30회
출전: 三國志 卷01 「遣徐晃史渙邀擊大破之盡燒其車」
정사 무제기: 원소가 죽자 아들 원담이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여양에 주둔했다. 202년 가을 조조가 정벌해 연전하자 원담·원상이 고수했다. 203년 봄 3월 조조가 외곽을 치니 이들이 나와 싸웠으나 대패해 밤에 달아났다. 연의 32회는 원상이 사환을 벤 뒤 직접 나와 장료와 맞서 크게 패하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6 | 관도 전 원소의 수송 부대를 서황과 격파해 군량을 불태웠고 중령군까지 올랐다(하후돈전 附 한호·사환, 무제기). |
| 무력 | 76 | 사견에서 미고를 베는 전역에 조인과 함께 도하해 싸웠다(무제기). |
| 지력 | 54 | 서황과 원소 운송 수레를 습격해 불태워 공이 가장 컸다는 기록이 있다(서황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은 없다. |
| 매력 | 50 | 한호와 함께 충용으로 이름났고 금병을 도맡았다(하후돈전 附 한호·사환).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사환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