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田疇)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69년사망 214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169년 — 전주전 「疇時年二十二」(초평 원년=190)에서 역산

사망 214년 — 건안 연간 졸(46세) — 졸년 전문 미명기. 214년은 출생 169 + 45로 환산한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90년장안종사(유우 사자)·기도위 사양기록
194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195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196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197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198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199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0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1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2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3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4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5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6년서무산(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7년무종사공호조연(오환 정벌 길잡이)기록
210년업(후 봉작 사양)추정
213년업의랑추정
214년업의랑추정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9년기타·재야(미출사)불명
190년기타·재야종사(유우 사자)·기도위 사양기록
191년기타·재야종사(유우 사자)·기도위 사양불명
192~193년기타·재야(유우 사후·서무산 입산)불명
194~206년기타·재야(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추정
207년위사공호조연(오환 정벌 길잡이)기록
208~209년위(후 봉작 사양)불명
210년위(후 봉작 사양)추정
211~212년위(후 봉작 사양)불명
213~214년위의랑추정

나온 사건·전투

190년 · 종사(유우 사자)·기도위 사양

유우의 사자로 사사로이 서관을 나가 변경 길로 장안에 이르러 칙명을 전하고 기도위를 사양한다.

정사 전주전: 유우가 사자를 구하자 전주가 나서 20기를 거느려 서관으로 나가 새북·삭방을 경유해 간도로 장안에 이르러 보고했고, 조서로 기도위가 되었으나 천자가 몽진 중이라며 사양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1 「疇乃更上西關出塞傍北方直趣朔方循閒徑去遂至長安致命」

194년 · (서무산 이주민 5천여 호 우두머리)

유우가 공손찬에게 살해되자 종족과 서무산으로 들어가 약법을 세워 5천여 호를 다스린다.

정사 전주전: 전주는 유우 묘에 보고하고 돌아와 종족 수백을 이끌고 서무산에 들어가 평지에 터를 잡고 농사지었고, 백성이 몰려들어 몇 해 사이 5천여 호가 되자 20여 조의 법을 세우고 혼례·학교를 만들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오환·선비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1 「遂入徐無山中營深險平敞地而居躬耕以養父母」 / 三國志 卷11 「疇乃為約束相殺傷犯盜諍訟之法」

207년 · 사공호조연(오환 정벌 길잡이) · 길잡이

조조의 오환 원정에서 여름 장마로 길이 막히자 무종에서 회군하는 척하며 노룡구로 우회하자고 건의한다.

정사 전주전: 건안 12년 조조가 오환을 칠 때 무종에서 장마로 진군하지 못하자 전주가 "회군하는 척하며 노룡구에서 백단의 험지를 넘어 허를 찌르면 답돈의 머리를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다"고 건의했고 조조가 따라 나무 표지를 세워 철수한 듯 속였다.

연의: 연의 33회

출전: 三國志 卷11 「從盧龍口越白檀之險出空虛之地」 / 三國志 卷11 「蹋頓之首可不戰而禽也」

207년 · 사공호조연(오환 정벌 길잡이) · 대승

전주가 길잡이가 되어 서무산·노룡·평강·백랑퇴를 지나 유성에서 오환 선우를 대파한다.

정사 전주전: 조조가 전주를 길잡이로 삼아 서무산에서 노룡을 나가 평강·백랑퇴를 거쳐 유성에서 200리 남짓 떨어진 곳에 이르자 오랑캐가 알아차렸고, 선우가 직접 진을 쳤으나 조조가 교전해 크게 베고 유성까지 추격했다. 조조가 전주를 정후로 봉하려 하자 고사했다.

연의: 연의 33회

출전: 三國志 卷11 「單于身自臨陣太祖與交戰遂大斬獲追奔逐北至柳城」

210년 · (후 봉작 사양)

조조가 전주에게 거듭 봉작을 권하자 하후돈에게도 "노룡의 요새를 팔아 상록과 바꿀 수 없다"며 끝내 사양하고 의랑이 된다.

정사 전주전: 조조가 전주를 정후로 다시 봉하려 했으나 전주는 상소해 죽음으로 맹세하며 사양했고, 하후돈이 설득하러 오자 "어찌 노룡의 요새를 팔아 상록과 바꾸겠느냐. 꼭 해야 한다면 앞에서 목을 쳐 달라"며 울었고, 조조가 굽힐 수 없음을 알아 의랑으로 삼았다. 46세에 졸했다.

연의: 연의 33회

출전: 三國志 卷11 「豈可賣盧龍之塞以易賞祿哉」 / 三國志 卷11 「太祖喟然知不可屈乃拜為議郎」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7년 · 백랑산 전투

정사 무제기: 207년 조조가 오환을 치러 무종에서 노룡새로 나갔으나 가을 큰물로 해안 길이 막혔다. 전주의 안내로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며 500여 리를 개통해 백단·평강을 지나 선비의 뜰을 건너 유성을 향했다. 유성 200리 앞에서 오환이 알아채고 답돈이 수만 기로 맞섰다. 8월 조조가 백랑산에 올라 적의 진이 어지러운 것을 보고 장료를 선봉으로 세워 대파했고 답돈과 명왕 이하를 베었다.

연의: 연의 33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0오환 정벌에서 노룡구 우회로를 안내해 답돈을 깨는 길을 열었다(전주전).
무력62이민 5천여 호의 우두머리로 20여 조의 법을 세워 집단을 통솔했다(전주전).
지력85여름 장마로 길이 막히자 "노룡구에서 백단을 넘어 허를 찌르자"는 계책을 냈다(전주전).
정치80서무산에서 약법 20여 조와 혼례·학교를 정해 5천여 호를 다스리고 오환·선비도 달랬다(전주전).
매력87원소·원상의 초빙을 거부하고 조조의 봉작도 끝내 사양한 절의로 인정받았다(전주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전주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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