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吳班)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170년경(추정)사망 231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1년 — 졸년 불명 — 정사의 마지막 등장은 건흥 9년(231) 기산(제갈량전 주). 231은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2년이릉장군 — 진식과 수군으로 이릉 주둔, 평지에 영을 세움기록
231년기산독후부 후장군·안락정후 — 기산에서 위연·고상과 위군을 막음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20년기타·재야(행적 불명)불명
221년촉한장군 — 풍습과 무(巫)에서 오의 이이를 격파불명
222년촉한장군 — 진식과 수군으로 이릉 주둔, 평지에 영을 세움기록
223~230년촉한장군불명
231년촉한독후부 후장군·안락정후 — 기산에서 위연·고상과 위군을 막음기록

나온 사건·전투

221년 · 장군 — 풍습과 무(巫)에서 오의 이이를 격파 · 승리

선주가 오를 칠 때 오의 이이·유아 등이 무·자귀에 주둔하자 오반이 풍습과 함께 무에서 이이 등을 격파하고 군이 자귀에 머문다.

정사 선주전: 선주가 손권이 관우를 습격한 것에 분노해 동정하려고 가을 7월 마침내 여러 군을 이끌고 오를 쳤다. 오장 육의·이이·유아 등이 무·자귀에 주둔했는데 장군 오반·풍습이 무에서 이이 등을 격파하고 군이 자귀에 머물렀다. 무릉 오계의 만이가 사자를 보내 병을 청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2 본 「將軍吳班馮習自巫攻破異等軍次秭歸」

222년 · 장군 — 진식과 수군으로 이릉 주둔, 평지에 영을 세움 · 유인

오반이 진식과 수군을 이끌고 이릉에 주둔해 강 동서 양안을 끼고 선다. 같은 때 육손은 오반이 평지에 영을 세워 싸움을 걸자 장수들이 치려 했으나 '반드시 계략이 있다'며 막고 지켜본다.

정사 선주전: 이듬해 봄 정월 선주의 군이 자귀로 돌아오자 장군 오반·진식이 수군으로 이릉에 주둔해 강 동서 양안을 끼었다. 육손전: 선주가 먼저 오반에게 수천 명을 이끌고 평지에 영을 세워 싸움을 걸게 했다. 장수들이 모두 치려 했으나 육손이 '이는 반드시 속임수가 있으니 우선 지켜보자'고 했다. 선주가 그 계략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복병 8천을 골짜기에서 내보냈고, 육손은 '그대들이 오반을 치자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반드시 속임수가 있다고 헤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이릉 전투, 육손의 화공

출전: 三國志 卷58 본 「先遣吳班將數千人於平地立營欲以挑戰」

222년 · 장군 — 진식과 수군으로 이릉 주둔, 평지에 영을 세움 · 주둔

선주전은 이 해 정월 오반과 진식이 수군으로 이릉에 주둔했다고 짧게 적는다. 같은 해 육손이 이어서 효정에서 선주의 군을 크게 깨뜨린다.

정사 선주전: 2년 봄 정월 선주의 군이 자귀로 돌아왔고 장군 오반·진식이 수군으로 이릉에 주둔해 강 동서 양안을 끼었다. 2월 선주가 자귀에서 장수들을 이끌고 진군해 산을 따라 고개를 끊고 이도 효정에 영을 쳤다. 여름 6월 육의가 선주의 군을 효정에서 크게 깨뜨려 장군 풍습·장남 등이 모두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이릉 전투, 육손의 화공

출전: 三國志 卷32 본 「將軍吳班陳式水軍屯夷陵夾江東西岸」

231년 · 독후부 후장군·안락정후 — 기산에서 위연·고상과 위군을 막음 · 승리

제갈량의 기산 출병 때 위 사마의가 장합을 보내 무당감 하평의 남쪽 포위를 치게 하고 스스로 가운데 길로 나오자 제갈량이 위연·고상·오반을 보내 맞서 크게 깨뜨려 갑옷 입은 수급 3천, 현개 5천 벌, 각궁 3,100장을 얻는다. 제갈량전 주(한진춘추)의 서술로, 연도는 건흥 9년(231)으로 둠.

정사 배송지 주 ― 漢晉春秋(제갈량전): 사마의가 장합에게 남쪽 포위의 무당감 하평을 공격하게 하고 스스로 가운데 길로 제갈량을 향했다. 제갈량이 위연·고상·오반을 보내 맞아 막게 해 크게 깨뜨리고 갑옷 입은 수급 3천 급, 현개 5천 령, 각궁 3,100장을 얻었으며 사마의는 영으로 돌아가 지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5 주(漢晉春秋) 「亮使魏延高翔吳班赴拒大破之獲甲首三千級玄鎧五千領角弩三千一百張」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4이릉에서 평지에 영을 세워 육손을 유인했고, 기산에서는 후부 지휘로 위연·고상과 위군을 막았다(육손전·선주전).
무력평가 불가개인 무용 기록은 없고 수군·유인 임무를 맡은 기록뿐이다(선주전·육손전).
지력50육손이 이 영을 공격하지 않은 것을 '필시 계략이 있다'고 읽어 오반의 유인 군이 계산된 미끼로 쓰인 것이 확인된다(육손전).
정치40정치 기록은 없다. 독후부 후장군·안락정후라는 직함이 이평 탄핵문에 전하나 이번 작업에서는 원문 구절을 대조하지 못했다.
매력평가 불가매력을 가늠할 직접 기록은 없다.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오반의 이동 경로

촉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