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56년 — 태평 원년 손침에게 삼족이 멸하며 피살(256)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53년 | 건업 | 위장군·도하독 | 기록 |
| 256년 | 무창 | 대사마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51~252년 | 오 | 태상 | 불명 |
| 253년 | 오 | 위장군·도하독 | 기록 |
| 254~255년 | 오 | 위장군·도하독 | 불명 |
| 256년 | 오 | 대사마 | 기록 |
태원 원년 손권의 병중에 도읍에 와 태상으로 머무르며 제갈각 등과 함께 유조를 받아 보정한다.
정사 등윤전: 태원 원년 손권이 병석에 눕자 도읍에 가 태상으로 남았고 제갈각 등과 함께 유조를 받아 보정하게 되었다. 손량이 즉위하자 위장군을 더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與諾葛恪等俱受遺詔輔政」
제갈각이 대군을 일으켜 위를 치려 하자 백성이 지쳤고 승산이 없다며 간한다.
정사 등윤전: 제갈각이 병력을 모두 모아 위를 치려 하자 등윤은 "상(喪)과 대(代)가 바뀌는 때 이윤·곽광의 부탁을 받았으니 백성이 쉬기를 바란다. 노역 뒤에 다시 출병하면 백성이 지치고 적은 방비하니 성을 못 빼면 앞선 공만 잃는다"며 간했다. 제갈각이 듣지 않고 등윤을 도하독으로 삼아 남은 일을 맡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君以喪代之際,受伊、霍之託」
손준 사후 여거와 함께 손침을 몰아내려 하다 손침이 포위해 삼족이 멸한다.
정사 손침전(등윤전에는 기록이 짧다): 손준이 죽자 여거는 연명으로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했으나 손침이 등윤을 대사마로 삼아 무창에 보냈다. 여거가 손침 폐위를 위해 연락하자 손침이 사촌 손려와 문흠·유찬·당자 등에게 여거를 치게 하고, 등윤은 손침이 보낸 화융·정안을 억류하고 자위했으나 여거가 오지 않아 손침의 군에 죽었으며 삼족이 멸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夷胤三族」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6 | 제갈각의 북벌 계획에 반대하며 백성의 피로와 승산 없음을 조목조목 간했다(등윤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68 | 이 간언에서 군이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홀로 편안하겠느냐고 짚었다(등윤전). |
| 정치 | 75 | 단양·오군·회계태수를 거치며 가는 곳마다 칭송받았다(등윤전). |
| 매력 | 77 | 손침에게 몰려 포위당해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평소처럼 담소했다(등윤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등윤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