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2년 — 황무 3년(224) 사촉 때 32세로 역산
사망 231년 — 「죄를 받고 6년 뒤 병사」로만 적혀 연도 없음. 231은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4년 | 성도 | 보의중랑장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2~223년 | 기타·재야 | (오군 오 출신, 장윤의 아들) | 불명 |
| 224년 | 오 | 보의중랑장 | 기록 |
| 225~231년 | 오 | (선조 사건에 연루) | 불명 |
손권의 사신으로 촉에 가서 제갈량과 조위에 대한 교제 뜻을 풀고 글을 올려 촉이 그 재주를 귀하게 여긴다.
정사 장온전: 32세에 보의중랑장으로 사촉했다. 손권이 "산월이 다 제거되면 촉과 크게 도모하려 한다"며 위와 통교한 뜻을 제갈량이 알지 못할까 하여 보낸다고 했다. 장온은 촉에 이르러 궐에 글을 올렸고 촉이 그 재주를 귀하게 여겼다. 연도는 오주전의 황무 3년 여름.
연의: 연의 86회 — 연의 86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7 「溫至蜀,詣闕拜章」
귀국한 뒤 선조랑 암염 사건에 연루되어 손권이 그를 유사에 가둔다.
정사 장온전: 촉을 칭찬한 일로 손권이 속으로 불쾌했고 명성이 너무 높아 끝내 자기에게 쓰이지 않을까 의심하던 차에 암염 사건이 일자 장온이 암염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하여 죄를 물어 유사에 가두었다. 장군 낙통이 상소로 변호했으나 손권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6년 뒤 병사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即罪溫」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75 | 촉에 사신으로 가 올린 글로 촉이 그 재능을 크게 귀하게 여겼다(장온전). |
| 정치 | 70 | 선조랑 시절 암염의 일에 연루되기까지 정사를 잘 맡았다는 평이 있다(장온전). |
| 매력 | 79 | 손권이 공경들에게 물으면 고옹이 「당금 짝이 없다」고 평했고 문사와 응대로 보는 이들이 놀랐다(장온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