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28년 — 감로 2년(266) 39세로 처형, 역산
사망 266년 — 감로 2년 손호가 연회에서 베어 죽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66년 | 무창 | 산기중상시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8~257년 | 기타·재야 | (여강 출신, 박학다식하고 술예에 능함) | 불명 |
| 258~263년 | 오 | 산기중상시·부마도위 | 불명 |
| 264~265년 | 오 | 산기중상시 | 불명 |
| 266년 | 오 | 산기중상시 | 기록 |
손휴가 즉위하자 하소·설영·우사와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고 부마도위를 더하며, 촉에 사신으로 가 칭찬받는다.
정사 왕번전: 처음 상서랑이었다가 관직을 떠났다. 손휴가 즉위하자 하소·설영·우사와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고 모두 부마도위를 더했다. 당시 평이 맑았다. 촉에 사신으로 가 촉 사람들이 칭찬했고 돌아와 하구감군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孫休即位,與賀邵、薛瑩、虞汜俱為散騎中常侍」
손호 초에 다시 중상시로 들어오지만 만욱과 어울리지 못하고 중서승 진성의 참소를 받는다.
정사 왕번전: 손호 초에 다시 들어와 중상시가 되어 만욱과 같은 관직이었다. 만욱은 손호와 구면이라 속된 선비들이 왕번이 스스로를 가볍게 안다고 말했고, 손호의 총신 중서승 진성이 자주 헐뜯었다. 왕번은 기상이 높고 밝아 안색을 받들지 못하고 때로 뜻을 거스르다 책망이 쌓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孫皓初。復入為常侍」
감로 2년 정충이 진에서 돌아온 연회에서 취해 엎드렸다가 손호의 노여움을 사 전각 아래서 참수당한다.
정사 왕번전: 감로 2년 정충이 진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자 손호가 군신을 크게 모았는데 왕번이 만취해 엎드렸다. 손호가 의심해 불쾌해 내보냈다가 얼마 뒤 돌아오기를 청하나 술이 깨지 않았고, 위엄 있는 성품으로 행동이 자약하자 손호가 크게 노해 전각 아래서 베게 했다. 위장군 등목·정서장군 유평이 구했으나 소용없었고, 승상 육개가 상소로 애통해했다. 39세. 가족은 광주로 옮겨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皓大怒,呵左右於殿下斬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83 | 널리 보고 많이 들었고 술예에 통했다(왕번전). |
| 정치 | 50 | 정치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상서랑을 그만두고 중상시로 올랐다). |
| 매력 | 60 | 촉에 사신으로 가 촉 사람들이 칭찬했다(왕번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왕번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