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43년 — 적오 6년 봄 졸(243)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0~225년 | 오 | 합포·교지태수 | 불명 |
| 226~230년 | 오 | 알자복야(수) | 불명 |
| 231~239년 | 오 | 장사(진군대장군 건창후) | 불명 |
| 240~242년 | 오 | 선조상서 | 불명 |
| 243년 | 오 | 태자소부 | 불명 |
사섭이 손권에 귀부한 뒤 설종을 오관중랑으로 불러 합포·교지태수를 제수한다.
정사 설종전: 사섭이 손권에 귀부한 뒤 설종을 오관중랑으로 부르고 합포·교지태수에 임명했다. 연도는 교주 귀부(210) 이후 220년대 초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除合浦、交阯太守」
교주 초창기에 자사 여대의 정벌에 함께 가 바다를 건너 구진에 이르고, 돌아와 알자복야를 대행한다.
정사 설종전: 교주가 막 열릴 때 자사 여대가 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서자 설종이 함께 가 바다를 건너 남정, 구진에 이르렀고 일을 마치고 도읍으로 돌아와 알자복야를 대행했다. 이어 촉 사신 장봉이 권 앞에서 감택의 이름으로 놀리자 즉석에서 「無口爲天,有口爲吳」라고 받아 쳤다. 연도는 여대의 교주 평정(226)에 맞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越海南征,及到九真」
황룡 3년 손려의 장사가 되어 반주에서 군무를 맡고 책을 가르친다.
정사 설종전: 황룡 3년 건창후 손려가 진군대장군이 되어 반주에 주둔하자 설종이 장사가 되어 밖으로는 군의 여러 일을 맡고 안으로는 책을 가르쳤다. 손려가 죽자 들어와 적조상서를 대행했고 상서복야로 승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以綜為長史」
적오 3년 선조상서, 5년 태자소부가 되어 선조를 그대로 맡는다.
정사 설종전: 적오 3년 선조상서로 옮겼고 5년 태자소부가 되어 선조의 직무를 그대로 맡았다. 시부와 논문 수만 자를 『사재』로 묶고 『오종도술』·『이경해』를 지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徙選曹尚書」
적오 6년 봄 졸한다.
정사 설종전: 적오 6년 봄 졸했다. 아들 설후(珝)는 위남장군까지 올랐고 설영(瑩)은 손호 때 선조상서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六年春,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85 | 촉 사신 장봉의 「獨」·「蜀」 자 농담에 「無口爲天,有口爲吳」로 즉석에서 되받아 장내를 웃게 했다(설종전). |
| 정치 | 70 | 여대가 교주를 떠날 때 후임이 걱정된다며 교주 통치 대책을 상소했다(설종전). |
| 매력 | 64 | 공손연의 번복에 격노한 손권이 친정하려 하자 상소로 간했고 군신 다수가 간해 손권이 그만두었다(설종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설종의 이동 경로